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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시즌은 KBO 리그에서 중요한 년도로 기억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선동열, 최동원, 김시진, 이만수, 김성한, 장효조 등이 이끌던 80년대 스타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종범, 양준혁, 구대성, 이상훈, 이대진, 박충식 등 1990년대 프로야구를 이끌어나간 신예 스타들이 데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초까지 명문구단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기존의 스타들을 대체할 새로운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공교롭게도 이 두 구단이 한국시리즈에서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해태가 구단 역대 최고인 .655의 승률(81승3무42패)을 기록했지만 그해 패넌트레이스에서 삼성에게만은 유독 7승 11패로 약했다. 그래서 코시는 재미있는 승부가 예측되었다.
특히 1993년 한국시리즈는 3차전 박충식의 15이닝 역투와 더불어 7차전까지 가는 접전으로 많은 야구팬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덕분에 2009년 이전 해태 타이거즈 시절 유일하게 7차전까지 가게 만든 팀이 이 해의 삼성 라이온즈였다.
삼성으로서는 많이 아까웠던 시리즈. 2002년의 코시 첫 우승 이전 가장 우승에 근접했던 시리즈 중 하나였으나, 해태에게 또다시 패하고 6번째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이 해를 마지막으로 삼성의 1차 전성기가 끝나고, 80년대를 이끌었던 주축 멤버들의 노쇠화와 맞물려 3년동안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다시 진출한건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뒤였다.
특히 우수한 신인이 쏟아져 나왔던 이 해에 신인왕 경쟁이 매우 치열하였고 결국 삼성의 양준혁이 해태 이종범과의 경쟁 끝에 우수한 타격 성적으로 신인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종범은 대신 한국시리즈에서의 맹활약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1993시즌 해태 타이거즈는 91년의 포스를 완전히 되찾은 막강 구단이 되어 돌아왔다. 선동열의 성공적 재활과 마무리 투수로서 맹활약이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다. 17승을 올린 조계현의 활약과 신인 이대진의 화려한 데뷔, 여타 투수들의 활약으로 투수진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10승 투수 6명의 금자탑을 세웠다. 타선의 힘은 주전들의 노쇠화로 약해졌지만, 신인 이종범과 3루수로 전향한 홍현우가 92년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어느정도 맹활약하면서 어느 정도 부족함을 메워주었다. 그러면서 1993년도 해태타이거즈는 당시 구단 역대 최다인 81승을 거두면서 2위인 삼성과의 게임 차를 7게임차로 벌렸고, 정규시즌 1위로 무난하게 한국시리즈로 직행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전력을 살펴보면 투수진에서는 92년도 부상으로 인해 공백기에 있었던 선동열이 돌아와 마무리 투수로 나와서 10승 3패 31세이브에 당시 규정이닝이던 126이닝을 채우며 방어율 "0.78"을 기록했다. 조계현이 17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선발진 에이스로 부상했다. 마당쇠 송유석이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여 11승을 기록했고, 신인 이대진이 데뷔하여 특유의 강속구를 앞세워 10승을 채웠으며, 이강철, 김정수도 10승을 달성하여 이 해 10승 투수가 6명이 배출되는 등 해태 투수진은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0승 투수 6명 배출은 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전해인 92년 10승 투수 5명(이강철, 김정수, 조계현, 신동수, 문희수)을 기록한 것에서 한층 더 진일보한 것. 흠좀무한 건 당시 팀 방어율이 2.92였음에도 불구하고 1위가 아닌 2위라는 것. 1위는 2.89를 기록한 OB. 3위는 2.95를 기록한 삼성. 명불허전 역대급 투고타저의 해.
타선의 힘은 그 전 해인 92년보다 많이 하락했다. 당시 팀타율이 .251로 4위에 그쳤다. 1위는 .271의 삼성. 팀 홈런도 95개로 2위에 그쳤으며 1위 삼성과는 무려 38개 차이였다(삼성은 당시 133개). 이순철, 장채근, 한대화, 김성한이 약속이나 한 듯 집단 노쇠화에 걸리며 그들 4명이 자그마치 그 전해에 쳤던 홈런보다 45홈런을 까먹었는데 그게 93년 95홈런, 92년 138홈런 -43을 그대로 차지했던 것이다. 부진했던 자리를 이종범이란 걸출한 신인이 등장하여 1993시즌의 해태를 아니, 그 이후의 타이거즈를 책임지게 되었다.
1993시즌은 삼성 라이온즈에게도 중요한 시즌이 되었다. 일단 기존의 이만수, 장효조, 허규옥, 김시진 등의 팀 초창기 스타들이 사라지고 80년대 중후반 데뷔한 류중일, 성준, 김성래, 이종두 등 2세대와 그 이후 데뷔한 강기웅, 동봉철, 김상엽, 김태한 등의 신예, 그리고 신인 양준혁과 박충식이 이끈 한해였다. 무엇보다 무릎 부상을 등에 업고 홈런왕과 시즌 MVP를 차지한 김성래의 투혼과 박충식의 한국시리즈 3차전 15회 역투 등…. 특히나 삼성은 1986시즌 이후로 두번이나 해태에게 가로막혀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여 이번의 막강한 전력으로 6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과연 매번 준우승에 머무른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깰 수 있는지도 큰 관심거리였다.
무엇보다 타선이 정규시즌 해태 투수진한테 유독 강했다. 삼성은 해태를 상대로 105득점을 올리며 쌍방울(108득점)에 이어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말이 105득점이지 투고타저가 심한 그해 특성상 그해 해태의 실점은 420실점이었다. 즉 실점중 1/4이 삼성을 상대로 내준 것이며 말그대로 2팀한테 내줄 실점을 삼성 한팀에게만 내준 셈이다. 게다가 그해 8월 7일 대구에서 삼성은 해태를 상대로 9개의 홈런을 쳐내며 15:2로 해태를 떡실신 시켰다. 그해에 해태를 상대로 32개의 홈런을 쳐냈다. 이것은 당시 시즌 특정팀상대 최다 홈런 기록이었다. 해태는 그해 피홈런수가 76개였다. 그중 원정경기 피홈런이 36개였는데 22개가 대구에서 허용한 것이었다. 삼성을 한국시리즈에서 홈런포로 찍어누르던 해태 팬들의 입장에서는 격불지감. 그러나 정작 당시 해태팬들은 별 걱정 안 했다고 한다. 9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한국시리즈 11연패를 하므로써 삼성은 큰 경기에 형편없다는 이미지가 굳어졌고 결정적으로 삼성측에서는 타격만 좋지 박충식을 제외하고 1경기를 책임져줄 투수가 없다는 인상이 강했다. 실제로도 한국시리즈에서 7게임 도합 2홈런에 그치며 해태투수들한테 철저히 발리고 만다.
1차전: 해태, 기선제압 (해태 승)
다승왕 "팔색조" 조계현(17승)과 탈삼진왕 "만딩고" 김상엽(170개)의 선발대결 속에 삼성은 2회초 김성현의 좌중간적시타로 1점을 선제했다. 김상엽은 5회까지 단 1안타에 6탈삼진을 기록하며 그때까지는 무사히 선발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일단 컨트롤 난조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는 김상엽이 습성대로 6회말 연속포볼로 무사1, 2루가 되면서 이종범 타석에서 또다시 볼카운트 2볼로 몰리자 우용득 감독은 류명선으로 마운드를 교체했다. 류명선은 사인미스로 보내기번트에 실패한 이종범을 유격수앞 병살타로 잡으면서 급한 불을 꺼 일단은 성공적인 투수교체로 나타났다. 그러나 7회말 투아웃까지 잘 잡아낸 류명선은 연속포볼로 1, 2루를 채워놓은 뒤 이순철에게 우전안타를 허용했고 이종두가 홈송구를 서두르다 볼을 뒤로 빠뜨리는 에러를 저질러 2 대 1로 역전당하고 말았다. 이 틈에 3루에 안착한 이순철은 정회열의 좌전적시타로 3점째를 올렸고 뒤이은 1, 2루 찬스에서 이종범이 원바운드로 펜스를 넘어가는 1타점 2루타를 터뜨려 승리를 확인했다. '전가의 보도' 선동열을 세이브로 투입, 삼성에게 추격할 생각을 단념케 한 해태는 8회말 한대화가 승리감에 도취된 홈팬들에게 좌중월 솔로홈런의 시원함을 선사했다. 해태의 5 대 1 승리. 그리고 삼성은 한국시리즈 12연패에 빠졌다.
2차전: 한국시리즈 12연패를 끊은 삼성의 1승 (삼성 승)
선발로 해태는 한국시리즈의 베테랑 김정수를, 삼성은 2년생 김태한을 각각 기용했다. 김태한은 피안타 7개를 맞았지만 연속안타를 피해가며 완봉승을 따냈다. 반면 김정수-이강철(4회)로 마운드를 교체한 해태는 고비마다 결정타를 얻어맞고 6 대 0으로 승부가 판가름나고 말았다. 삼성은 4회초 2사후 연속안타로 김정수를 쫓아내고 릴리프 이강철로부터 사구를 얻어 만루를 만들었다.곧이어 터진 2루수 키를 살짝 넘어가는 바가지 안타로 3점을 뽑았다. 삼성은 7회초 홈런왕 김성래가 2점홈런을 터뜨리고 이종두 이만수가 연속2루타를 터뜨려 3점을 보탬으로써 6 대 0으로 승부를 갈랐다. 86년(3차전)부터 이어진 KBO 한국시리즈 12연패를 끊은 귀중한 승리였다.
여담으로 김태한의 완봉승은 한국시리즈 첫 좌완 완봉승이었는데 두번째 좌완 완봉승은 무려 24년 후 양현종에 의해 나오게 된다.
3차전: 아기사자 박충식의 투혼의 181구 (무승부)
팀간 1승1패로 맞선 3차전. 해태의 선발은 1988년 한국시리즈 MVP였던 문희수를, 한편 삼성은 입단 첫해 14승을 거두며 에이스로 급부상한 루키 박충식을 내세워 한치의 양보 없는 명승부전을 펼친다. 2회말 2사2루에서 삼성이 김성현의 좌전적시타로 선제득점을 올리자 해태는 3회초 1사2, 3루에서 이종범이 3루쪽 내야땅볼로 반격했다. 삼성이 3회말 2사1, 2루의 기회를 잡자 김응용 감독은 즉시 선동열을 투입, 불을 껐다.
해태는 6회초 홍현우가 솔로홈런을 터뜨려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삼성은 6회말 2사2루에서 이종두가 좌중간 2루타를 때려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끝없는 0의 행진. 박충식은 낙차 큰 싱커와 제구력을 자랑하며 해태 타자들에게 무수한 땅볼 아웃을 잡아냈고, 선동열 역시 최고 151km의 강속구와 슬라이더를 꽂으면서 응수했다. 그러다 7.1이닝 동안 101구를 던지며 1실점을 하고 먼저 내려간 건 선동열. 대구 관중들은 환호했으나, 뒤이어 11회에 등판한 송유석이 특유의 묵직한 직구로 5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결국 경기는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오후 6시1분에 시작된 경기는 4시간30분이 지난 10시31분에 종료됐으나 연장 15회 2:2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1982년 OB:삼성 1차전, 1983년 해태:MBC의 4차전에 이은 한국시리즈 3번째 연장 15회 무승부였다.
박충식은 15회까지 던지며 문희수 - 선동열 - 송유석이 이어던진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무려 181구를 던지며 완투했다. 한국시리즈 역대 최고의 투수전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경기.
4차전: 삼성, 먼저 앞서 나가다 (삼성 승)
해태는 4회초 김성한의 우중간2루타, 이호성의 중전적시타, 이종범의 우중간 적시2루타로 2점을 뽑았다. 이번 시리즈들어 첫 선취득점. 그러나 삼성은 4회말 곧바로 무사1, 3루의 찬스를 잡아 김성래의 우익수 희생플라이, 양준혁의 중전적시타로 동점을 만들고 계속된 2사2, 3루에서 김성현이 2타점 좌중간2루타를 터뜨려 4 대 2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삼성은 5회부터 마운드를 넘겨받은 이강철을 8회말 2사사구를 끼워 집중 4안타로 공략, 4점을 더 보태 8 대 2로 완승을 거두었다. 삼성의 2승1무1패 리드.
5차전: 이종범의 발야구에 농락당한 삼성 (해태 승)
팀 분위기의 반전을 노린 해태는 1차전 승리 투수였던 조계현을 마운드에 올려 5차전을 갖게 된다. 이에 맞선 삼성은 성준을 기용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한 번도 해태와 맞붙지 않은 점을 감안한 투수 기용이었지만, 주축 투수인 박충식, 김상엽, 김태한을 모두 소모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1회말 이순철의 도루를 곁들여 만든 2사1, 2루에서 김성한의 우전적시타로 1점을 선제한 해태는 3회말 좌전안타로 나간 이종범이 2, 3루를 거푸 훔친 뒤 홍현우가 2루수 뒤로 넘어가는 짧은 플라이를 때렸을 때 과감하게 홈으로 파고들어 2점째를 올렸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한 리드를 지키던 해태는 4회말 공격 2사 1루 상황에서 장채근이 박철우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 큼지막한 투런홈런을 잠실벌에 쏘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어 낸다.해태 조계현은 완봉승에 원아웃을 남겨둔 9회초 2사후 이만수에게 2점홈런을 내줘 완투승에 그쳤지만 4:2의 승리는 끝까지 움켜쥐고 있었다. 양팀 2승1무2패.
6차전: 노장 김성한의 관록포 (해태 승)
종반으로 치달을 때까지도 깨지지 않던 2:2의 균형은 8회초 김성한의 한 방으로 기울어졌다. 이순철이 1사후 류명선으로부터 포볼을 골라 나가자 김성한은 볼카운트 0-1에서 몸쪽 직구를 힘껏 끌어당겨 왼쪽 담장을 넘겼다. 김성한으로서는 한국시리즈 개인통산 최다홈런(4호)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6회초 이호성의 좌익선상 2루타로 2 대 2 동점을 만든 직후부터 마운드를 인계받은 선동열은 6회말 선두 김성래, 후속 이종두에게 연속안타를 맞아 무사1, 2루의 핀치에 몰렸으나 양준혁을 좌익수플라이로 처리하고 이만수와 한기철을 연속삼진으로 잡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의 기틀을 다졌다.
이 경기에서 김성한은 시리즈 최고령홈런(35세 5개월 7일)을 기록한다.
7차전: 결국 우승을 거머쥔 해태, V7 (해태 승)
이종범의 재치가 해태를 우승으로 이끌었다.1회말 우전안타로 나간 이종범은 삼성의 허약한 포수어깨를 놀리듯 망설임없이 2루를 훔쳐 홍현우의 좌전적시타로 득점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스코어는 1:0. 3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도 빠른 발을 살려 유격수쪽 내야안타를 만든 이종범은 다시 2루를 훔쳤다. 이 대회의 7호 도루. 한국시리즈 최다도루 타이(7개)이자 최다연속도루성공이었다. 이것은 득점과 무관했으나 4회말 2사1, 2루의 기회가 주어지자 좌익선상 적시타를 날려 2 대 0을 만들었다. 5회말 이호성의 우중간적시타로 3 대 0으로 앞서자 김응룡 감독은 6회초 무사1, 2루의 위기에 몰린 송유석을 선동열로 구원하고 6회말 이순철의 좌전적시타로 4점째를 보태 파장 분위기를 만들었다. 삼성은 9회초 우월 2루타로 나간 이종두를 강태윤이 우전적시타로 불러들였으나 이미 2사후여서 영패를 면하는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 타자인 이만수가 유격수 땅볼로 그쳤고, 이종범이 1루수 김성한에게 송구해서 아웃카운트를 잡은 후 두손을 치켜들며 포수 정회열을 보면서 환호하는 선동열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화를 완성하는 장면이었다. 올드 해태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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