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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어, 롯데 자이언츠 & 최동원이 4승 3패로 우승. 일명 최동원 시리즈.
전기리그 1위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희대의 져주기 게임을 시전하면서 롯데를 한국 시리즈 파트너로 골랐다가 최동원에게 패배한 것으로 유명한 시리즈.
1984년 프로야구는 전기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100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루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한 팀이 전·후기리그를 제패하면 한국시리즈는 자연히 소멸되었던 것이 그 당시의 시스템.
1984년 당시 전기리그에서 우승한 삼성은 후기리그까지 제패,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킬 계획이었다. 그리고 당시 삼성 멤버를 보면 그럴만도 했다. 김시진, 김일융의 투톱에 이만수, 장효조를 위시한 타선까지 치면 거의 공포의 팀이었으니...문제는 후기리그가 시작하면서 당초의 계획과 달리 후기리그까지 제패해서 통합 우승할 길이 멀어지자 파트너 선택으로 머리를 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2연전이 남은 시점에선 이미 통합 우승은 산술적으로도 가능성이 전혀 없어진 상황에 어차피 치뤄야할 한국시리즈라면 그에 대비해 전력을 비축하는 한편 손쉽게 이길 수 있는 팀 탐색에 들어갔고 그리하여 선택된 팀이 전기리그에서 4위를 차지했던 롯데 자이언츠.
이것은 당시 박영길 타격 코치의 회고에도 나온다. 이때 박영길 혼자서 롯데가 아닌 OB를 주장했고 김영덕 감독 이하 다른 코치들은 롯데를 지지했다. 박영길은 과거 아마 롯데 감독으로 실업야구 코리안 시리즈에서 말도 안되는 최동원의 활약상을 봤었기에 우려한 것이다.
그나마 삼성이 롯데를 어째어째해서 표가 덜나게 우승하게 만들어 줬으면 괜찮았을텐데 너무 표가 나다 못해 지켜보는 사람이 이 무슨 병림픽이라고 할 정도의 노골적인 져주기 게임를 거치면서 롯데가 후기 리그를 우승해버리면서 일이 커졌다. 게다가 리그 마지막 2경기가 후기 리그 우승팀(=한국시리즈 진출팀)을 결정짓는 경기인 만큼 전국에 방송 중계였기 때문에 더욱더 지탄을 받았다. 허구연 해설위원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중계를 맡았던 MBC는 대놓고 져주기 경기가 이어지자 중계를 중간에 끊을 것을 검토하였다고 한다.
안타 치고 고의로 오버런해서 주루사를 당하고, 수비할 때는 플라이성 타구를 일부러 안 잡아서 롯데 선수들을 진루시켜 주고 홍문종이 칠 차례만 되면 무조건 고의사구로 출루시키질 않나 고의적인 실책으로 롯데 주자들을 꾸역꾸역 진루시켜 주는 등 그야말로 일부러 져주기 위한 발악의 연속이었다.
최종 2연전에서 해태도 OB를 상대로 져주기를 시전했다. 이쪽은 이미 자신들도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상황에 제과업계 라이벌인 롯데가 한국시리즈 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서였지만, 롯데가 2승을 거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실패. 물론 삼성의 져주기보다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저 말도 안 되는 져주기 경기 때문에 여러 기사들이 나면서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KBO에서는 고의로 져주는 경기가 없도록 규정을 손보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미팅 자리에서 최동원 선수한테 1, 3, 5, 7차전 선발을 통보한다. 이건 너무 무리한 일정이라면서 반발하는 최동원 선수한테 강병철 감독은 나직히 한마디를 남기는데 "동원아... 우짜겠노? 여까지 왔는데..." 그리고 최동원은 딱 한 마디를 남기고 마운드로 향한다.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김일융과 김시진의 확실한 원투펀치가 있는 삼성에 비해 롯데의 확실한 에이스는 최동원 혼자 뿐이었다. 나머지는 삼성에 비하면 공기나 다름없었고 결국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롯데의 강병철 감독은 이런 극단적인 투수기용을 선택한 것.
더구나 이건 롯데 구단 역사상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자 한국시리즈 진출이었다. 물론 삼성 역시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절박한 과제가 있었지만 하위권을 전전하다 오랜만에 다가온 천금같은 기회를 잡은 롯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롯데로선 두번 다시없을 이 기회를 우승으로 연결시키고 싶었다.
1차전: 가을의 전설이 시작되다 (롯데 승)
양팀 선발투수는 최동원과 김시진.
각 양팀의 에이스 투수들이 맞붙어 투수전이 되리라 예상되었지만 의외로 김시진이 초반에 롯데 타선에 털려 강판당하면서 경기는 최동원이 7개의 삼진을 잡으면서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완봉승으로 끝났다. 삼성도 나름대로 최동원의 공에 대한 공략법을 가지고 있어서 7안타를 치며 분전했지만 산발안타로 끝나며 무득점을 하게 된다.
삼성으로서는 김시진 강판 이외에도 아쉬운 것이 김시진 강판 이후 릴리프로 올라온 권영호가 6이닝 3피안타로 호투했다는 것도 아쉬운 점. 권영호의 경우에는 이후에도 선발 및 불펜으로 등판하여 준수한 투구를 보여준다.
어째보면 이 경기가 김시진의 한국시리즈에서의 불명예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시진은 통산 124승을 거뒀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0승 7패를 기록했다.
2차전: 예상된 롯데의 패배 (삼성 승)
양팀 선발투수는 김일융과 안창완.
롯데의 안창완도 나쁘지 않은 투수였지만 상대가 삼성의 사실상 에이스 김일융이었다는 점에서 롯데의 패배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롯데의 계획 자체도 최동원이 등판하지 않는 날은 그냥 버리는 경기지 애초에 이길 생각도 이길 능력도 없었다. 롯데 투수진에서 최동원 다음의 활약을 보였던 제2선발 임호균을 2차전 선발로 내보내지 않고 구원으로 아꼈다는 점에서도 롯데의 이러한 전략이 잘 나타난다.
삼성은 1:1로 동점이던 3회말에 장효조의 2점홈런으로 기세를 제압한후 이후에도 안창완-임호균-천창호-배경환을 연달아 두들겨 추가 득점하면서 1차전의 패배를 확실하게 되갚았다.
3차전: 최동원의 완투 (롯데 승)
양팀 선발투수는 최동원과 김시진.
1차전 리턴매치. 선취점은 먼저 롯데가 삼성 수비진들의 실책을 틈타 2회말, 3회말에 연달아 1점씩을 얻었고 최동원은 4회 1실점 이후 호투를 하다가 7회 득점권 상황에서 장효조에게 적시타를 맞는 바람에 1실점을 했지만 그외 삼성 타자들은 철저히 누르는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1차전과 달리 3차전에서 김시진은 산발 5피안타로 2실점만 내주며 7회까지 호투를 이어가면서 이번에야말로 삼성의 에이스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8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홍문종의 강한 타구에 왼쪽 발목을 맞으면서 쓰러져버리고 만다. 이후 긴급히 등판한 권영호가 8회를 무실점으로 마무리 지으나 9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정영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롯데가 승리.
1차전 완봉 이후 이틀 쉬고 나온 최동원은 산발 6피안타로 12탈삼진을 따내며 완투승을 거두며 시리즈 2승을 거둔다.
4차전: 에이스 김일융의 호투 (삼성 승)
양팀 선발투수는 김일융과 임호균.
최동원에 가려져 있지만 임호균은 1984년 롯데에서 최동원에 이은 제2선발로 활약하며 롯데의 후기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임호균은 1984시즌 롯데의 투수진 중 최동원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2자리 승수를 거둔 투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삼성의 선발은 김일융으로 투타 모두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한 삼성은 5회까지 3점을 먼저 내고 이후에도 홈런 2방을 곁들여 4점을 더 보태 7:0으로 화끈한 완승을 거둔다.
삼성의 선발 김일융은 8이닝 4피안타 8탈삼진으로 롯데 타선을 가볍게 발라버리며 시리즈 2승을 따낸다.
5차전: 최동원의 3번째 완투, 그러나... (삼성 승)
양팀 선발투수는 최동원과 권영호.
원래 김시진이 올라와야했지만 김시진은 3차전에 당한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고 게다가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함을 드러내는 김시진 대신 권영호가 선발로 등판하게 된다.
경기 초반은 최동원이 5회까지 3안타만을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던지고 있는 롯데가 2:0으로 리드를 잡아나갔으나 계속된 연투에 지친 최동원이 6회에 홍승규의 3루타와 장효조의 적시타로 인해 1점을 내주며 이후 장효조의 도루와 롯데의 실책으로 추가로 1실점하면서 2-2 동점이 되고 만다. 이 상황에서 7회에 삼성은 원래 6차전 선발로 예정했던 김일융을 투입하는 강수를 둔다. 그리고 김일융은 그 기대에 호응하듯 이후 3이닝을 무실점을 막았으며 그 사이 7회말에 대타 정현발이 솔로홈런을 날리면서 승부를 결정짓게 된다.
반면에 삼성과 달리 계속 되는 연투에 지친 최동원을 구원 등판할 투수가 롯데에는 없었고 이후 최동원은 9회까지 완투한다.
구원등판한 김일융은 시리즈 3승을 먼저 거둔 반면, 최동원은 6피안타로 호투했으나 완투패를 기록하게 된다.
시리즈 스코어 롯데 2-3 삼성. 최동원을 투입하고도 진 롯데로서는 이제 남은 길이 없었다. 애초에 최동원 하나만 믿고 가기로 한 시리즈였고 그 외의 투수들을 쓰기에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반면 삼성은 최동원이 등판하지 않을 6차전만 잡으면 되기에 우승을 가져온 듯 했었다. 최동원도 84년 삼성 상대로 크게 강하지 못했지만 그외 롯데의 나머지 투수들은 삼성 타선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쉬운 상대이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9이닝 완투한 투수가 그것도 1, 3, 5차전을 연속으로 완투한 투수가 6차전에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예상 범위 밖이기도 했기에 이 시점에서 삼성의 우승은 확정되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6차전: 김시진의 좌절 (롯데 승)
양팀 선발투수는 김시진과 임호균.
삼성의 선발은 3차전에서의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상당히 호전된 김시진으로 김시진으로서는 앞의 1, 3차전에서의 패배를 극복하고 자존심을 세울 절호의 기회였다. 무엇보다 김일융이 한국 시리즈내내 호투하면서 최동원과 김일융의 대결구도가 흐르는 것도 김일융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김시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한편의 롯데의 선발은 전날인 5차전에 최동원을 써버리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그나마 믿을만한 임호균이 선발로 나선다.
선취점은 삼성이 냈다. 이만수와 장효조의 적시타로 1점을 냈고 이제 에이스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올라온 김시진의 호투만 있으면 삼성이 이길 것 같았는데...
4회말 1사 조성옥의 볼넷으로 인한 출루 이후에 롯데의 클린업 트리오인 홍문종, 김용철, 김용희가 연속 안타를 터뜨리며 3점을 뽑아내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최동원이 다시 올라왔다.
6차전에서 패하면 시리즈에서 패할 위기에 있었던 롯데는 전날 완투한 최동원을 5회부터 다시 등판시켰다. 이는 선발이었던 임호균이 자청한 것이었다. 롯데의 2선발이었던 임호균은 이날 좋은 모습을 보였고 팀이 3점을 리드하고 있는 만큼 1이닝만 더 버티면 승리투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팀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최동원이 더욱 확실하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최동원의 등판을 요청했으며 최동원이 승리를 챙길 수 있도록 5회부터 등판하도록 배려했다. 다만 KBS N 스포츠에서 강병철 감독이 밝힌 당시 임호균이 4회에 내려간 이유는 손가락 살이 까져서 공을 던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최동원이 등판한 5회 이후 삼성 타선은 최동원을 상대로 단 3안타만을 뽑아내며 맥없이 물러나고 만다. 이후 롯데 타자들이 최동원의 역투에 보답하듯 8회에 3점을 더 내며 6:1로 롯데가 승리하게 된다. 에이스로서의 자존심을 찾으려 했던 김시진은 완투끝에 한국시리즈 2패를 당한다.
5회부터 구원등판한 최동원은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구원승을 기록하며 시리즈 3승을 거둔다.
7차전: Dreams come True (롯데 승)
양팀 선발투수는 최동원과 김일융.
한국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7차전이 열리게 되었다. 주의 깊은 위키러라면 알아차리겠지만, 원래 7차전은 10월 8일에 열리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10월 8일 서울지역에 내린 비로 인해 7차전 날짜가 하루 밀렸다. 결국 이 비가 사실상 양 팀의 승부를 가른 셈이 됐다. 제아무리 무쇠팔 최동원의 투혼이 거세다 하더라도 5차전과 6차전 이틀 연속으로 14이닝을 연달아 던진 상황에서 7차전까지 연투를 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자락 가을비가 지쳐 있던 최동원의 어깨를 살려준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시리즈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시작은 삼성이 유리했다. 아무리 최동원이라도 계속된 연투에 지쳐 있었기에 구위가 상당부분 떨어져 있었다. 사실 김일융 역시 상당히 지쳐있었다.
삼성은 2회말 1사 만루에서 2루수 앞 땅볼과 적시타로 먼저 3점을 내고 이후에도 삼성의 오대석이 솔로홈런을 치며 삼성은 4점으로 승기를 굳히게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야구는 투수만으로 하는게 아니라는 격언이 이날 롯데에게 반대로 적용되었다. 롯데 타자들은 안될거야 아마가 아닌 필사적인 자세로 삼성의 공격을 몸을 날려 막았고 3회초에 김재상 적시타를 통해 1점을 낸다. 하지만 김일융의 투구에 철저히 눌려 만족할만한 점수를 내지 못하다가 이전 타석까지 한국시리즈 내내 19타수 1안타에 허덕이다가 겨우 중전 안타로 나간 유두열을 장효조가 실책성 플레이로 한문연에게 3루타를 선사하며 불러들이고 정영기의 적시타를 통해 4:3까지 쫓아가게 된다.
이후 운명의 8회. 롯데는 1사 이후 김용희와 김용철이 연속 안타로 출루하면서 1사 1, 3루라는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된다. 이때쯤 삼성의 김일융 역시 연투로 지쳐 있었고, 최동원보다 안타를 더 많이 맞은 상황이었기에 몇번이나 덕아웃을 쳐다보며 구원요청을 하지만 김영덕 감독은 그 상황에서 김일융을 제외하고는 믿을 투수가 없었기에 그 구원요청을 외면하고 만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한국시리즈 20타수 2안타의 유두열. 볼카운트는 1스트라이크 1볼. 3루 롯데 응원석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울려퍼지고 있었고, 김일융은 1루에 힘없는 견제구를 던진 뒤 최소한 장타만은 맞기 않기 위해 몸쪽으로 파고드는 패스트볼을 던졌다
그리고 이날 경기의 승부를 결정지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한방이 나왔다. 시리즈 내내 20타수 2안타로 빈타에 허덕이던 유두열의 방망이가 순간적으로 돌면서 맞춰낸 타구는 좌측 담장을 훌쩍 넘겨 폴대 오른쪽을 살짝 지나갔다. 역전 쓰리런 홈런이 터져나온 것이었다.
점수는 이제 롯데 6:4 삼성
이후 김일융은 바로 강판되고 몸을 풀고 있던 황규봉이 구원등판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롯데쪽으로 넘어갔고 삼성은 8회 1사 3루, 9회 2사 3루의 기회를 잡고 역전을 노려보지만, 8회말에는 오대석의 깊은 2루수 플라이에 3루주자 함학수가 홈으로 언더베이스를 하다가 박영태의 정확한 송구로 아웃당하였고,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장태수가 최동원의 라이징 패스트볼에 하프스윙 삼진을 당하며 패배하고 만다.
그리고 한국시리즈는 롯데 자이언츠, 아니 최동원이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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