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열린 KBO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대결. 당시 두 팀의 대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때마다 모두 우승한' 해태, '한국시리즈에서 패배 자체가 없는' LG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결과는 해태의 통산 9번째 우승. 한국시리즈 MVP는 93년에 이어 이종범이 차지했다. 해태는 이해 패넌트레이스에서 2~5위인 LG, 쌍방울, 삼성, OB를 상대로 37승 1무 34패를 기록할 정도로 평타 수준이었지만, 현대, 한화, 롯데를 상대로 38승 16패를 기록하면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롯데는 해태에게서 3승 15패를 기록, 해태의 패넌트레이스 우승을 도와주는 훌륭한 먹잇감이 되었다. 반면 LG는 해태에 10승 8패로 우위를 보이고도 쌍방울에 6승 12패, 삼성에 8승 10패를 기록하면..
1996년 열린 KBO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가 대결하였다. 1996년 시즌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시즌이었는데 당초 상위권으로 분류되던 LG, 롯데가 모두 탈락하고 꼴찌를 다툴것으로 예상된 해태, 현대, 쌍방울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가만히 있던 삼성과 한화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허나 한화 이글스는 포스트 시즌 진출을 했고 삼성은 가을야구 탈락과 동시에 현재까지 구단 최악의 흑역사였던 6위를 기록했다. 특히 해태는 시즌 전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이순철의 유남호 폭행 사건과 항명 파동까지 일어나고 동열이도 없고, 성한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즌 우승을 했다. 특이사항이라면 인천광역시에서 열린 4차전에서 당시 현대의 선발 투수였던 정명원이 현재까지 KBO 한국시리즈최..
1993시즌은 KBO 리그에서 중요한 년도로 기억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선동열, 최동원, 김시진, 이만수, 김성한, 장효조 등이 이끌던 80년대 스타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종범, 양준혁, 구대성, 이상훈, 이대진, 박충식 등 1990년대 프로야구를 이끌어나간 신예 스타들이 데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초까지 명문구단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기존의 스타들을 대체할 새로운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공교롭게도 이 두 구단이 한국시리즈에서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해태가 구단 역대 최고인 .655의 승률(81승3무42패)을 기록했지만 그해 패넌트레이스에서 삼성에게만은 유독 7승 11패로 약했다. 그래서 코시는 재미있는 승부가 예측되었다. 특히 1993년 한국시리즈는 3차전 박충식..
1991년 10월 9일에 시작하여 4승 무패로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한 시리즈. 전년도에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을 바로 되갚으면서 최강자로서 다시 해태가 군림하는 계기가 된 시리즈이자, 1990년대 4차례 통합 우승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기도 하다. 시리즈 MVP는 팀의 주전 포수로서 15타수 7안타 8타점을 친 장채근. 전년인 1990년 간발의 차로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하고, PO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충격적인 3연패를 당한 후, 김응용 감독은 바로 지리산에 칩거하며 팀의 문제점을 분석했고, 그 결과를 통해 1991년에는 그야말로 칼을 갈고 나오며 시즌을 임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해진 전력에 독기를 품은 해태는 1991년에 시즌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시즌 초반 김성한의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5..
1989년 10월 26일에 시작하여 11월 1일에 종료된 한국시리즈로 해태 타이거즈가 1988년에 이어 또 다시 빙그레 이글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다. 해태는 이 우승으로 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및 전무한 한국시리즈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반대로 빙그레 입장에서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우승을 놓치면서 1999년 우승 전까지 가장 우승에 가까웠던 순간을 아깝게 놓쳤다.사실 빙그레 전력으로 보면 이때보다는 92년이 더 아까웠다. 시리즈 MVP는 18타수 8안타를 치면서 활약한 박철우. 1989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시즌 체제가 도입된 시즌이었다. 이미 1988년에 돌풍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준 빙그레는 1989년에는 돌풍을 넘어 태풍을 일으켰다. 정규시즌 운용에 있어서는 타..
198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6일까지 펼쳐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로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하면서 통산 4번째 우승이자, 최초의 3연패를 달성한 시리즈다. 삼성 라이온즈가 2013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며 3연패를 가져가기 전까지 25년동안 깨지지 않았던 기록이다. 그야말로 해태가 당대 최강자로서의 위엄을 과시한 시리즈. 1986년과 1987년이 제도의 허점 때문에 해태가 유리했다는 말을 전후기 통합 우승 및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그런 말을 들어가게 만들었다. 시리즈 MVP는 1차전 세이브와 3차전 완봉승, 6차전 완투승을 거두면서 2승 1세이브로 맹활약한 문희수. 1986년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2위를 차지해 전후기리그 우승 없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해서 우승을 차지했고, 1987년에는 후기리그에서 천신..
해태가 4전 전승의 완승을 거두면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이자, 프로야구 역사상 첫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시리즈다. 반대로 삼성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한국시리즈 징크스가 발동하는 악몽 같은 시리즈였다. 한국시리즈 MVP는 시즌 내내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김준환이다. 1986년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했지만, 후기리그 4위로 내려 앉으면서 PO을 치러야 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한 삼성 라이온즈는 감독을 김영덕에서 박영길로 교체하고 1987년에는 독하게 우승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 결과는 1987년 팀 타율 3할과 전기 및 후기리그 동반 제패의 위업이었다. 이 해 삼성의 전력은 타력이 워낙 막강했다. 팀 타선은 1번부터 9번까지 쉬어갈 틈이 없었고, 23승을 거둔 김시진을 필두로 한..
해태 왕조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시리즈이자, 삼성의 슬픈 준우승 전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한국시리즈. 승부 자체도 매 경기 접전 양상으로 벌어졌고, 두 번의 연장전과 5차전 모두 3점차 이내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1980년대 개판이었던 관중 문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졌던 시리즈로 더 기억에 남으면서 시리즈의 치열했던 접전이 모두 묻혀버린 비운의 시리즈. 해태 타이거즈는 이 우승으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 되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1986년 1월에 열린 KBO 이사회였다. 1985년 프로야구가 삼성의 전,후기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사라져버리자, 김이 샐대로 샌 KBO는 어떻게든 한국시리즈를..
1983년 10월 15일에 시작해서 10월 20일에 종료된 한국시리즈. 4승 1무로 해태 타이거즈가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시리즈 MVP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딛고 한국시리즈에서 맹타를 휘두른 김봉연. MBC 청룡의 내분으로 인해 자멸한 시리즈이기도 하고, 해태 타이거즈도 이 시리즈 이후 유명한 불고기 화형 사건이 벌어지는 등, 이래저래 경기 자체보다는 경기 앞 뒤의 에피소드가 더 유명한 시리즈다. 사실 경기 내용 자체는 태업성 플레이가 겹치면서 영 좋지는 않았다. 원년에 선수 부족에 시달리면서 4위를 차지한 해태는 김응용 감독의 취임 이후 김응용의 지도력에 더해 재일교포 포수 김무종이 안방을 책임지고, 이상윤과 주동식이 팀의 투수진을 구축하면서 선두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장명부의 괴력을 앞세운 삼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