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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넌트레이스 1위팀 현대 유니콘스와 3위팀 LG 트윈스가 맞붙었던 한국시리즈이자 1994년 한국시리즈의 리턴매치다.


인천광역시 연고 야구팀 사상 첫 우승으로 인천광역시의 야구팬들에겐 삼청태시절의 한을 풀어버릴 수 있었던 시리즈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비인천지역 팬들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만년 하위권팀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만 2년 후 현대가 수원으로 야반도주하면서 인천팬들과 비인천팬들은 서로 갈라지고 으르렁거리는 관계가 돼버렸다.


페넌트레이스에의 전력은 현대가 81승 45패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LG도 전년 해태에 이어 해볼만한 게 현대에게 11승 7패로 유독 강했다. 특히 태평양-현대 입장에서는 LG의 유지현, 김동수가 상당히 얄미웠던 존재였다. 게다가 LG는 1997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5차전까지 가는 바람에 힘을 소진한 상태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결국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 해에는 4차전에서 끝내고 어느 정도 힘을 비축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왔기에 재미있는 승부가 예측되었다.


흔히 2002년부터 잠실 야구장 중립구장 경기 규정이 완화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 이 규정이 처음 적용된 해가 바로 1998년이다. 서울 팀이 올라올 경우 1, 2, 6, 7차전을 페넌트레이스 우승팀, 3, 4, 5차전을 플레이오프 승리팀 구장에서 열리는 방식을 채택했다. 따라서 6차전은 잠실이 아닌 인천에서 치뤄졌다. 하지만 이는 이듬해 양대리그가 실시되면서 1년만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페넌트레이스 때 상대 전적은 LG 트윈스가 우세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선 전혀 다른 양상이 되었다. 당시 현대 입장에서는 LG가 올라오지 않기를 내심 바랐었다. LG에서 유지현, 김재현, 김동수 등 주축 선수들이 현대 전에 유독 강했기 때문이었다. 1998시즌 2위 삼성 라이온즈와 3위 LG 트윈스가 플레이오프에서 격돌하자, 현대 유니콘스는 삼성 라이온즈가 이기고 올라오길 바랐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은 LG가 이겨버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대 유니콘스가 1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LG보다는 더 오래 쉬었기도 하고. 애초에 LG의 성적이 승률 5할에서 1승 더한 기록이라 현대한테만 약간 강했을 뿐 그다지 강한 전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즌 성적이 월등히 높았던 삼성이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진 게 이변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결국 4승 2패로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다. 신인 김수경이 등판한 6차전 승리가 거의 굳어지자 현대는 정민태를 마무리로 냈고, 정민태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플라이볼로 처리하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사실 정규 시즌에는 마무리 투수가 용병인 조 스트롱이었지만 워낙 방화를 즐겨서 포스트시즌 마무리 투수는 선발 투수인 김수경과 정민태 등이 분담해서 맡았다.


당시 정명원은 우승 기념 인터뷰에서, 같이 고생했던 정현이랑 창호가 없어서 너무 아쉽다.는 코멘트를 남기면서 눈시울 붉히기도 했다. 인천연고팀 최초의 가을야구의 주축이었던 투수 3총사 중 정명원만이 유일하게 우승을 맛본 것. 아이러니하게도 최창호와 박정현은 1998 시즌 트레이드 마감시한일 전까지 현대 소속이었다. 그러나 최창호는 시즌 중 박종호와의 맞트레이드 때문에 LG로 넘어가 상대편 덕아웃에 앉아 있었고, 박정현은 부상 이후 재활불가 판정을 받고 가내영+6억 원과 묶여 명목상 조규제와의 맞트레이드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넘어갔다. 힘든 시절을 같이 보냈던 세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애잔하게 갈렸다.


한국시리즈 MVP는 정민태가 수상했다.


여담으로 이 한국시리즈에서 타선에서 가장 활약한 선수는 박재홍이었다. 한국시리즈 경기 전에 부상으로 못 나올 줄 알았는데, 테이핑까지 하면서 지명타자로 출전했는데 4차전 잠실 야구장 좌측 풀대 대형 홈런을 친 것이 화재가 되어 펄펄 날았다.


반면 LG는 정규시즌 주전 2루수로 활약했던 신국환이 병역 문제(명목상은 신장염)로 시즌 말에 전열에서 이탈한데 이어 손지환마저 플레이오프에서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 이름만 올리고 출전할 수 없는 등 전력 누수가 있었다.




1차전: 유니콘의 쌍둥이 학살 (현대 승)


1차전 매치업은 한국시리즈 MVP 2회에 빛나는 투수 김용수와 한국시리즈 무승 투수 정민태의 대결이다. 그리고 정규리그 다승왕 1위 김용수(18승) 2위 정민태(17승)의 대결이기도 했다.


정민태는 4년전 LG와 경기에서 4이닝 동안 노히트노런을 기록, 5점차 리드를 지키면서까지 잘했는데, 불펜들이 대거 삽질해서 물거품으로 끝난 적이 있었다.


1회초부터 정민태가 유지현, 김재현, 주니어 펠릭스를 3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면서 압도적으로 기세를 눌렀다. 저때 승부는 이미 현대로 기울었다고 당시 LG의 전력분석관이었던 김정준 코치의 회고. 현대의 정민태는 아마시절 부터 사용하던 변화구 구종인 체인지업과 스플리터와 포크볼을 정규시즌 때 어느정도 사용하면서 한국시리즈 내내 LG 타자들을 제대로 농락 했다. 하지만 상대 선발이었던 김용수도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까지 뛰었음에도 정민태 못지않게 잘 던졌다.


승부는 5회말부터 시작 되었다. 현대의 클린업 타선들이 대거 5점을 뽑아 내면서 달아났다. 지칠대로 던진 김용수를 강판 하고 LG는 추가득점을 막는다. 그렇게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구원투수 송유석이 7회 선두타자 이숭용의 쐐기를 박는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그리고 현대는 8회 스캇 쿨바의 홈런으로 7:0까지 달아나는데다 상위타선에서 5점을 더 얻어버린다. 거기서 8회초까지 잘 던지고 나간 정민태에 이어 루키 김수경이 등장했다.


그러나 LG가 몸을 풀지 않은 루키 김수경에게 2점을 얻는다. 당황하던 김수경이 박경완의 리드를 잘 보면서 여차하면서 승부를 끝냈다. LG가 사실상 흐름을 잘 타고 가지 못한 것이 패착이 되겠지만, 이미 전력손실한 게 큰 타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2차전: 절묘한 투,타의 공격으로 홈에서 2연승한 현대 (현대 승)


현대 선발은 정명원, LG 선발은 최향남 2차전에서도 선발투수가 승부를 결정지었다.


정명원은 6이닝 동안 6안타 2볼넷을 내주면서도 실점을 1점으로 최소화하며 승리투수가 된 반면에 최향남은 3.1이닝 동안 홈런 두 방을 맞고 자멸했다. 4실점하는 부진으로 패전을 안았다.


이 날도 선취점은 현대가 먼저 기록했다. 현대는 2회말 이명수의 중전안타로 1-0으로 앞서 나갔다. 3회말, 김인호와 박재홍의 역대 KBO 한국시리즈 최초의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며 점수를 3-0까지 벌렸다. 결국 최향남은 4회말 2사 만루에서 강판되고 여기서 전준호의 밀어내기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면서 현대가 1점을 더 추가했다.


LG는 6회초 김재현과 주니어 펠릭스의 연속안타, 심재학의 볼넷으로 만루의 천금 같은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이병규의 라인드라이브가 2루수 이명수의 글러브에 빨려들어가며 더블아웃. 7회초 무사 1·3루에서도 이명수가 병살을 처리하면서 기회를 날려먹었다. 7회부터 구원으로 나온 김수경은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 한국시리즈 최연소 세이브를 기록했다.




3차전: 손혁의 깜짝 호투, 위기에서 벗어난 LG (LG 승)


인천에서 1~2차전을 내준 LG가 위기에 몰렸다. 결국에는 경기 내내 전력이 손실됐던 LG는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의외의 깜짝 호투로 팀 승리를 이끌었던 선발투수 손혁을 올려 보냈다. 현대는 가을야구 경험이 있는 구원투수 조규제를 이 날 선발투수로 투입했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의 패배가 될 줄 누가 알았던가?


손혁은 이날 경기에서 7이닝 동안 6안타 1볼넷 7삼진 무실점으로 역투, 팀을 벼랑 끝의 위기에서 구출했다. 1·2차전에서 투수력을 모두 소모한 LG는 궁여지책으로 내보낸 손혁이 대성공을 거두며 기사회생했다. 이날 손혁이 기록한 최고구속은 144km/h였다.


LG는 선발 라인업을 우타자 대거 몰빵으로 1회말 공격부터 반드시 이기겠다는 투지를 보였다. 유지현이 몸이 덜 풀린 조규제를 상대로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한 뒤, 1사후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여기서 박경완이 악송구를 범하며 주자는 1사 3루. 이어 펠릭스의 좌전안타가 나와 1-0, LG가 시리즈 들어 첫 선취득점에 성공했다. 


현대는 선발투수를 좌완 조규제를 올렸다.


4회에는 이날 좌완 조규제에 맞춰 4번으로 기용한 김동수가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바깥쪽 높은 직구를 잡아당겨 만든 115미터짜리 좌월 1점 홈런. 천보성 LG 감독은 이날 조규제를 겨냥해 1루수에 좌타자 서용빈 대신에 우타자 김선진을, 중견수 이병규 대신 김종헌을 선발 라인업에 기용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7회에도 LG는 심재학이 2-3 풀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으로 1루에 진출한 뒤, 대주자 이병규가 2루 도루에 성공해 무사 2루 찬스를 잡았다. 이어 이종열의 희생번트와 안상준의 좌익수 희생플라이 등 팀 배팅이 이어지며 점수는 3-0.


착실하게 득점에 성공한 LG와 달리 현대는 좀처럼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끌려갔다. 5회초 박경완의 볼넷과 이명수의 안타로 만든 1사 1·3루에서는 딜레이드 더블스틸을 시도하다 3루 주자가 아웃되며 기회가 무산됐다. 7회에도 이숭용과 김경기의 연속안타에 박경완의 희생번트를 묶어 1사 2, 3루를 만들었지만 이명수가 2루수 뜬공으로, 왼손 대타들로 내세우지만 박종호가 삼진, 마지막 타자인 김광림이 병살타를 쳐서 득점실패. 8회초 구원 등판한 마이클 앤더슨을 상대로 스캇 쿨바가 좌전 적시타를 쳐내 김인호가 홈을 밟은 것이 이날 현대의 유일한 득점이었다.




4차전: 에이스의 눈부신 활약, 정상에 1승만을 남겨두다 (현대 승)


4차전 현대는 선발 정민태가 또 한 번 경기를 지배했다. 고작 사흘을 쉬고 선발로 등판한 정민태는 4차전에서 8이닝 동안 5안타 1볼넷 1실점하고 삼진 12개를 잡아내는 역투로 시리즈 2승째를 기록했다. 많은 관계자들은 “설마 또 1차전 때처럼 던질 수 있겠냐”고 의구심을 보였지만, 결과는 1차전 때보다 더욱 압도적인 무서운 호투. 반면 LG는 선발 김용수는 4.1이닝 7안타 4실점으로 떡실신 당하며 시리즈 2패째를 안았다. LG를 한국시리즈까지 몰고 온 일등공신이었던 MVP였지만 이미 지칠 때로 지친 몸이었다.


현대는 1회부터 앞서갔다. 1회초 2사후 발목에 테이핑을 한 박재홍이 중전안타로 출루한 뒤 쿨바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었다. 이숭용도 볼넷으로 나가면서 2사 만루. 여기서 김경기가 좌전안타로 주자 두 명을 불러들였다. 2-0 2회초에도 선두 이명수가 풀카운트에서 김용수의 몸쪽 높은 직구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는 115m짜리 1점 홈런을 터뜨렸다. 3-0. 정민태의 구위를 감안하면 결승점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물량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4회초 박경완이 3차전까지 무안타 부진을 씻는 3루선상 2루타를 때려냈다. 전준호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며 2사 1·3루. 김인호 타석에서 현대 벤치는 LG 내야의 허점을 파고드는 기습 더블스틸을 감행했다. 당황한 김동수의 송구가 2루 베이스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쳤고, 베이스커버를 들어온 선수는 유격수 유지현이 아닌 2루수 이종열이었다. 잡을 수가 없었다. 점수가 4-0으로 더욱 벌어졌다. 현대는 8회에도 2사후 박진만이 볼넷으로 나가 2루 도루에 성공한 뒤 전준호의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1점을 보탰다.


LG는 뒤늦게 1득점을 시작하였다. 9회에는 선두타자 박재홍이 비거리 125미터짜리 대형 좌월 풀대를 맞추는 솔로포로 6-1을 만들었고, 이숭용과 김경기가 연속볼넷으로 나간 뒤 박경완의 좌전안타로 7-1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6안타에 허덕인 LG 타선은 8회말에 1점을 뽑는 데 그쳤다. 반면 현대 박재홍은 발목을 절뚝이면서도 5타수 4안타 1홈런 1타점 2득점을 기록해 팀 승리를 이끌었다. 3승째를 거둔 현대는 시리즈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됐다.




5차전: 4시간의 혈전이자 졸전, 벤치 클리어링 끝에, 승부의 결말은 인천에서 (LG 승)


9이닝짜리 경기였지만 4시간에 걸친 대혈전이었다. LG가 최향남의 호투와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6-5의 신승을 거뒀다. 최향남은 6이닝 5안타 3볼넷 3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고, 6-5로 앞선 8회초 1사 만루에서 나온 송유석은 팀 승리를 끝까지 지켜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실책과 볼넷, 각종 신경전과 빈볼시비가 난무하는 졸전에 가까웠다.


시작은 현대 쪽이 좋았다. 현대는 1회초 선두 박종호가 볼넷으로 나간 뒤 김인호의 번트와 박재홍의 우전 안타로 1점을 먼저 냈다. 하지만 추가점을 내지 못하고 1회말 곧바로 펠릭스가 중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경기는 1-1 동점, 흐름은 LG 쪽으로 향했다.


시리즈 내내 잠잠하던 LG 타선은 2회 들어 폭발했다. 선두 김동수가 좌월 2루타로 정명원을 흔들었다. 이어 서용빈의 희생번트 때 정명원이 1루로 악송구 실책을 저지르며 주자 모두 세잎. 평정심을 잃은 정명원은 이병규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이종열 타석 때 폭투까지 범해 2-1 역전을 허용했다. 투수교체 타이밍을 놓친 현대 벤치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경기는 LG쪽으로 기운 상태. 무사 2·3루 위기가 계속됐다. 여기서 시리즈 9타수 무안타였던 안상준이 우전안타로 1점, 유지현이 희생플라이로 1점을 보태 점수는 순식간에 4-1이 됐다.


하지만 시리즈 우승을 앞둔 현대의 집념은 무서웠다. 현대는 3회초 전준호가 이종열의 실책으로 출루한 뒤, 김인호의 2루타와 포수 김동수의 패스트볼, 쿨바의 중전안타로 2점을 추격했다. 4-3. 그러자 LG는 3회말 반격에서 1사후 펠릭스의 우중간 2루타로 곧장 응수했다. 뒤이은 심재학의 번트 때 투수 김홍집이 3루로 뛰는 펠릭스를 신경 쓰다 1루 송구가 늦어지며 주자 올 세이프. 서용빈의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면서 상황은 1사 만루로 더욱 악화됐다. 시리즈 12타수 무안타의 이병규 타석. 이병규는 언제 부진했냐는 듯이 깨끗한 안타를 쳐내며 3루 주자를 불러들였고, 후속 이종렬도 안타를 기록하며 다시 점수가 6-3으로 벌어졌다.


엎치락뒤치락하던 경기는 6회 들어 과열양상으로 흘러갔다. 6회초 1사후 이숭용이 최향남의 공에 맞은 뒤 마운드로 뛰쳐나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양 팀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모두 뛰쳐나왔고,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곧이어 6회말 LG의 공격에서도 2사후 김재현이 위재영의 공에 오른발을 맞고배트를 집어던지며 분노를 표했다. 이미 경기 시작 전부터 현대 측이 잠실운동장 관리소 측에 ‘3루 불펜 마운드를 높여달라’고 요구하면서 한바탕 신경전을 벌인 양 팀이었다.양 팀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나오며 결국 어이없는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정명원 이후 김홍집, 최원호, 위재영, 조규제, 김수경 등 주력 투수진을 전부 쏟아 부으며 추격의 기회를 노리던 현대는 8회초 공격에서 1사 만루라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앤더슨이 난조를 보이며 몸에 맞는 공과 볼넷으로 밀어내기 2득점하며 6-5. 한 방이면 동점 내지 역전까지도 가능한 상황. 여기서 LG 벤치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마당쇠’ 송유석을 투입했다. 현대의 선택은 LG출신으로 트레이드 되어 온 타격감이 좋은 대타 박종호. 하지만 박종호가 송유석의 마당쓸기 병살타로 쓸려나가며 찬스가 끝이 났다. 기세가 오른 송유석은 9회초에도 1사후 장정석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했지만, 대타 장광호를 또 병살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시리즈 2승 3패. 이제 우승의 향방은 새 중립구장 규정에 따라 현대의 홈 구장인 인천에서 가려지게 됐다.




6차전: 꿈에도 그리던 인천 연고 야구단의 첫 우승! 한을 풀다! (현대 승)


정민태로 시작해서 정민태로 끝난 시리즈가 됐다. 현대는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선발 김수경의 역투와 정민태의 마무리로 LG에 5-2로 승리했다. 경기 초반 매 이닝 주자가 나가면서도 점수가 나지 않던 공방은 4회말 현대 공격에서 한방에 결판이 났다.


현대는 4회말 3번 박재홍의 좌전안타로 기회를 잡았다. 쿨바의 잘 맞은 타구가 펜스 앞에서 중견수에게 잡히면서 찬스가 무산되는가 싶었지만, 이숭용이 볼카운트 0-1에서 손혁의 복판 높은 체인지업을 잡아당겨 우월 투런포를 터뜨렸다. 2-0 현대 리드. 카운터 펀치를 맞은 손혁은 김경기와 박경완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며 흔들렸고, 결국 일찌감치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2사 1, 2루. 여기서 박진만이 다시 좌전안타를 때려내며 한 점을 더 보태 점수는 3-0.


5회말에도 현대는 박재홍의 볼넷으로 시작해 쿨바가 송유석의 3구째 슬라이더를 번개처럼 잡아당겨 좌월 2점포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쐐기포가 되었다. 5-0. 현대는 이틀간 휴식을 취한 정민태가 언제든 마운드에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지친 LG가 만회하기에는 벅찬 점수 차인 데다 흔들리던 김수경도 4회부터 안정을 찾아 호투를 펼치고 있었다. 


LG가 5-1로 추격한 8회초, 1사 1루에서 현대는 투수를 정민태로 교체했다. 정민태는 최원호가 남긴 주자를 불러들여 1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남은 아웃카운트 다섯 개를 더 이상의 실점 없이 막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타자 유지현이 중견수 이숭용의 뜬공으로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 물러나며 그렇게도 꿈꾸던 인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삼청태 이래 17년 만에 이뤄졌다. 그 순간 정민태는 마운드 위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17년을 한결같이 기다려 준 관중석의 팬들도 경기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연안부두 노래와 함께 오열했다. 팀의 4승 중 2승을 혼자 따 낸 정민태는 별다른 경쟁자 없이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다른 경쟁자는 타자 스캇 쿨바


근데 마지막 카운트를 잡은 이숭용이 2011년 은퇴 전 인터뷰에서 당시 마지막 카운트를 잡자마자 너무 기분이 좋아서 관중에게 던졌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고 주장 정명원과 김경기가 대뜸 창단 첫 우승 공인데 관중에게 주면 안 된다고 핀잔을 줬으나, 결국은 그 공을 못 찾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현대가 우승한 총 4회 아웃 공 카운트는 1개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이숭용이 잡았다. 이숭용은 이 해에는 중견수로, 1루수로 두 번 잡았다. 2000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는 당시 주장이던 좌익수 김인호가 잡았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처음으로 선발로 나온 김수경은 이날 7회 1사까지 4안타 볼넷 3개로 무실점(1 비자책)하며 한국시리즈 최연소(19세 2개월 10일)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현대가 이후 인천에서 우승 팡파르를 울리는 일은 없었다. 현대는 거짓말같이 2년 후 수원으로 연고 이전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인천에서 다시 우승 팡파르가 울린 것은 9년 이나 지난 후, 새로운 인천팀에 의해 새 구장 에서 이루어졌다.


여담으로 이 날 경기 시작 전 박찬호가 시구자로 나와 시구를 던졌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15승을 거두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기둥투수로 자리매김한 박찬호였기에 한국시리즈에서 시구를 할 것이라고 예상되기도 했다. 다만 언제 던지느냐가 문제였을 뿐. 이날 박찬호는 정장차림으로 마운드에 올라 깔끔하게 시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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