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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벌인 한국시리즈.


1992년 한국시리즈의 리바이벌 매치로, 99년 한국시리즈 당시 경기양상이 92년 한국시리즈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1999년부터 양대리그 제도를 실시, 포스트시즌이 드림리그 1위 - 매직리그 2위 / 매직리그 1위 - 드림리그 2위가 맞붙어 승자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개최되었다.


매직리그 2위였던 한화 이글스는(당시 전체 승률 4위) 구대성을 앞세워 드림리그 1위(전체 승률 1위)였던 두산 베어스를 4:0으로 가볍게 스윕하여 여유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드림리그 2위 롯데 자이언츠(당시 전체 승률 2위)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평가된 매직리그 1위(전체 승률 3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4승 3패로 매우 힘겹게 올라와 불리했던 상태. 결국 체력이 다 빠진 롯데 자이언츠를 한화 이글스가 4승 1패로 비교적 쉽게 꺾고 창단 첫 우승을 따낸 시리즈이다.


재미있는 건 1999 시즌 자체는 크보 역사상 손꼽히는 타고투저 시즌이었으며 한국시리즈 진출팀 한화와 롯데 모두 타력이 좋은 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시리즈는 대체로 투수전 양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 실제로 한화는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팀타율 .176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사상 최저 팀타율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만한 타격으로도 4승 1패로 우승했다는 건 역설적으로 당시 한화의 주력 투수진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증명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타율을 감안하면 꽤 점수도 냈다. 2016 한국시리즈에서의 NC 다이노스와 별차이 없는 타율이지만, 한화는 18점이나 득점했다. 


이렇듯 시리즈 전적과는 별개로 경기 자체는 3점 이내의 치열한 접전을 보여준 시리즈이지만, 그 전의 포스트시즌 사상 가장 치열했던 플레이오프 중 하나의 임팩트가 너무나 커서 은근히 묻힌 감이 없지 않은 비운의 한국시리즈이기도 하다.




1차전: 신데렐라가 된 저니맨 (한화 승)


홈팀 롯데는 박보현을, 한화는 정민철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롯데는 포수마스크를 지난 플레이오프의 영웅 임수혁이 썼는데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라인업. 게다가 큰 경기 경험이 전무한 무명투수 박보현을 1차전 선발투수로 내세웠는데 지난 플레이오프 7차전까지 피튀기는 혈전을 치르느라 주축 투수들이 과부하가 걸려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반면 롯데에 비해 달콤한 휴식을 취한 한화는 큰 어려움 없이 적지에서 먼저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송지만과 백재호의 연속안타로 맞은 1,3루 찬스에서 임수혁의 포일로 의외로 쉽게 선취점을 뽑았고, 이후 임수혁의 판단미스로 박보현의 야수선택이 이어졌다. 이 시점에서 롯데는 두 번째 투수로 염종석을 올렸고, 포수까지 강성우로 바꾸며 배터리를 통으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한화는 이어 강석천의 내야 땅볼로 한 점을 더 얻었다.


그러나 롯데는 5회말 김응국과 펠릭스 호세의 연이은 홈런으로 일거에 석 점을 뽑으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러나 한화도 가만 있지 않았고 바로 다음 6회초 공격에서 백재호가 염종석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쳐내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강석천이 볼넷으로 출루한 상태에서 롯데는 투수를 가득염으로 교체. 한화 벤치에서는 대타 작전을 실시했고 대타의 주인공은 바로 그 시즌 가득염을 상대로 2타수 2홈런을 기록한 최익성이었다. 타석에 들어선 최익성은 마치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듯 좌측 담장을 넘기는 결승 투런 홈런을 날려버렸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4번째 대타 홈런. 이날 선발투수 정민철의 훗날 증언에 의하면 최익성은 아직도 반농담으로 "내가 그 때 한국시리즈 우승시켰다."며 너스레를 떤다고 한다. 1차전 승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동점상황에서 상대 전의를 꺾는 투런을 쳐냈으니 그럴 만도.


한화는 6회부터 마운드에 끝판왕 구대성을 출격시키며 굳히기에 들어갔고 이어 7회초 공격 때 강석천의 적시타로 쐐기점을 뽑아내며 서전을 깔끔한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2차전: 적지에서 두 경기를 싹쓸이하는 독수리 (한화 승)


롯데는 문동환을, 한화는 송진우를 선발로 마운드에 올렸다.


한화의 불꽃같은 공격력은 1회부터 상대 선발 문동환을 몰여붙였고 장종훈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2회에는 조경택이 기대치 않았던 솔로홈런을 쳤고 5회에는 무사 1,2루 상황에서 장종훈이 또다시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4-0으로 멀찍이 앞서나갔다.


롯데는 8회말 마해영이 2타점 적시타를 치는 등 끝까지 추격을 노렸지만 구대성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지는 못했다.



3차전: 거인,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 (롯데 승)


홈팀 한화의 선발은 이상목, 롯데는 플레이오프 MVP였던 박석진이었다. 홈에서 2패만 떠안은 롯데 입장에서는 더 이상 패하면 벼랑으로 몰리는 상황. 경기전 한영준코치는 우리가 최소한 잠실은 가야하지 않겠냐면서 독려.


롯데는 박석진이 한화의 강타선을 꽁꽁 묶어두는 사이에 2회초와 5회초에 손인호와 공필성이 각각 1타점씩을 기록하며 경기를 쉽게 풀어가는가 싶었지만, 7회말 박석진이 제이 데이비스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마운드를 내려간 데 이어 에밀리아노 기론이 댄 로마이어에게 볼넷을 내주고 이어 장종훈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해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 놓고 만다.


경기의 후반부는 각기 구원등판한 기론과 구대성의 팽팽한 투수전이 펼쳐졌으나, 10회초에 박현승의 3루선상 적시 2루타가 공필성을 홈으로 불러들였고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었다. 구대성은 3경기 연속 등판했으나 이 날은 패전을 기록했다.



4차전: 정상까지 단 1승 (한화 승)


한화는 1차전에 이어 정민철이 다시 선발의 중책을 맡았고 롯데는 이에 맞서 주형광을 내세웠다.


두 선발투수는 4회까지 날카로운 피칭을 선보이며 경기를 투수전 양상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5회초에 정민철이 선두타자 임재철에게 볼넷을 허용했고, 임재철은 희생번트와 외야 깊숙한 플라이에서의 주루플레이를 통해 3루까지 진루한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공필성이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깔끔한 안타로 임재철을 홈으로 불러들여 0의 균형을 깼다.


롯데는 6회초에도 박정태와 펠릭스 호세의 연속안타로 1사 1,2루의 찬스를 맞이했으나, 이어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과 임재철의 뜬공으로 추가점 찬스를 날려버리게 되고 곧이어 6회말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1사상황에서 최익성이 2루타를 친 데 이어 임수민이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했고, 이어 남연이형 제이 데이비스의 2루타 때 최익성이 홈을 밟으며 스코어는 1-1 동점이 된다. 선발투수 주형광 대신 마운드를 이어받은 손민한은 로마이어를 거르고 장종훈과 승부하는 초강수를 택했으나, 장종훈은 이 날의 결승타가 되는 희생플라이를 쳐 낸다. 이 때 비거리가 다소 짧아서 홈승부가 위험하긴 했으나 중견수 임재철의 송구가 다소 정확하지 못했고, 3루주자 임수민 역시 포수를 살짝 비켜지나가는 절묘한 주루플레이로 홈플레이트를 터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정민철은 7.2이닝까지를 책임지고 마운드를 내려갔고, 이어 이상군과 구대성이 이어 등판하며 롯데의 타선을 틀어막으며 한 점차 살얼음 리드를 지켜냈다. 


불멸의 명승부에서는 당일 한화의 선발이었던 정민철 해설위원이 연습만 하던 서클 체인지업을 시즌 중에는 쓰지 않다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회고했다. 원래 다음 해에 해외 진출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인데, 잠이 안와서 오전 7시에 절에서 산책하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썼다고 한다.



5차전: 4전 5기 독수리, 마침내 한을 풀다. (한화 승)


중립경기로 잠실 야구장에서 5차전이 치러졌다. 원래 5차전은 10월 28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비가 내려 하루 미뤄졌고, 한화는 전날 예고한 선발 송진우를 그대로 등판시켰으나 롯데는 문동환 대신 박석진을 선발로 올렸다. 롯데 입장에서 하루 휴식은 굉장히 큰 것이었기 때문에 1승 3패에서 시리즈를 뒤집었던 플레이오프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며 경기전 분위기가 나름 뜨거웠다.


선취점을 뽑은 쪽은 롯데였다. 2회말에 펠릭스 호세가 내야안타로 출루한 후 조경환의 플라이성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견수 제이 데이비스와 우익수 송지만이 동시에 다이빙캐치를 시도하다 공을 놓치면서 호세가 홈을 밟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한화는 3회초 선두타자 이영우가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고, 임수민의 희생번트에 의해 1사 2루 상황에서 데이비스가 박석진의 초구를 통타하며 이영우를 홈까지 불러들였다. 여기에서 무난한 단타가 됐을 쉬운 타구를 호세가 뒤로 흘려버리는 실책을 저지르면서 데이비스에게 3루까지의 진루를 허용하고 말았고, 이는 이어 댄 로마이어의 짧은 플라이성 타구가 조경환의 글러브에 맞고 떨어진 상황에서 데이비스가 홈까지 들어오게 만드는 발판이 되었다. 이렇게 스코어는 2-1 역전이 되었다.


롯데의 6회말 공격 때 한화 선발 송진우는 갑자기 난조를 보이면서 볼넷 두 개와 몸에 맞는 볼 하나를 허용했고 만루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김민재가 내야 인필드 플라이로 물러나며 투아웃이 되었고, 이에 롯데의 故김명성 감독은 임재철을 대타로 기용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임재철은 송진우와의 승부에서 4구를 통타하여 중견수 앞에 떨어뜨렸고 그 사이 3루주자와 2루주자가 홈을 밟아 점수는 3-2로 다시 역전. 그러나 이 과정에서 데이비스는 신속한 판단으로 홈승부를 포기하고 공을 곧바로 3루로 송구했고, 다소 무리한 베이스러닝으로 3루를 노렸던 1루주자 마해영이 3루에서 주루사하고 만다. 결과론적으로 따지면 이후 경기양상을 생각할 때 이 아웃카운트 하나는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롯데가 승리를 굳힐 찬스는 8회말에 다시 찾아왔다. 구원투수 이상군을 상대로 선두타자 공필성이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날렸고 과감한 주루플레이로 3루타를 만들어낸 것.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박정태였는데... 배트에 맞은 공은 우익수 방향으로 날아가 무난한 희생플라이가 될 것 같았으나 한화의 우익수는 다름아닌 송지만이었고, 송지만은 간결한 동작으로 포수에게 기가 막힌 송구를 쐈다. 이에 놀란 3루주자 공필성은 3루로 황급히 되돌아가다가 태그아웃당하는 불상사를 낳고 만다. 이후 공필성은 덕아웃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장면이 바로 곧 이어질 대반전의 서곡이 되는데...


9회초 공격에 임한 한화는 선두타자 최익성이 범타로 물러났으나 데이비스가 롯데 구원투수 손민한을 상대로 안타를 치며 출루했고, 이어진 와일드피치 때 2루까지 진루했다. 타석에서 그 장면을 지켜본 로마이어는 역시나 흔들린 손민한을 가만히 두지 않았고, 우중간을 가르는 적시타로 데이비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동점을 만들었다. 게다가 본인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과감한 주루플레이를 통해 3루까지 안착했다. 이 주루플레이 하나가 경기 결과를 바꿨다고 할 수 있는데, 이어 타석에 들어선 장종훈의 우익수 플라이 때 로마이어가 홈을 밟을 수 있었기 때문. 사실 타이밍상 홈승부가 쉽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우익수 호세의 송구가 다소 홈플레이트에서 비껴난 지점을 향하면서 한화가 경기를 역전하는 점수를 얻게 된다.


9회말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이 구대성이 등판했는데, 의외로 쉽지는 못했다. 선두타자는 볼넷으로 출루했고, 다음 타자가 보내기 번트를 대면서 1아웃 2루 상황이 되었다. 1점차에서 아직 희망을 걸었던 롯데는 플레이오프 대역전의 영웅 임수혁을 대타로 기용했지만, 파울플라이 아웃. 다음 타자는 한국시리즈 3차전 롯데의 결승타를 기록했던 박현승. 그러나 박현승마저 2루수 앞 땅볼로 물러났고, 그것으로 경기는 끝났다.


번번이 한국시리즈에서 눈물을 흘렸던 한화의 창단 첫 우승 순간이었다. 그리고 20세기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팀이라고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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