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포수 최다 골든글러브, 포수 최초 2000경기 출장에 빛나는 1990년대 최고의 포수 2009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으며, 2010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배터리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KBO 리그 역사상 이만수, 박경완과 더불어 3대 포수로 불릴 정도로 꾸준했고, 좋은 성적을 기록한 포수. 1980년대는 이만수, 1990년대는 김동수, 2000년대는 박경완의 시대라 불렸다. 등번호는 백인천이 감독으로 있었던 1990~1991년까지는 12번, 1992년 이후로는 어느 팀을 가더라도 계속 2번. 최고의 투수 리드로 정평이 나 있었고 타격도 수준급이었으며, 넓고 깊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 덕에 홈런에서 손해를 보았지만 팀내 홈런왕에 오른게 4차례일 정도로 장타력이 출중했다. KBO ..
1990년대 LG 트윈스의 신바람야구를 상징하는 선수이자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했던 좌완 파이어볼러. 대한민국 투수 중에서 구대성, 박찬호, 김병현, 임창용, 오승환과 함께 '한, 미, 일 프로 무대를 모두 경험한 선수이자, 한미일 3개국 프로야구 1군 경기에 모두 등판했던 최초의 선수이다. 구대성은 2005년 미국에 진출하며 이 기록을 달성했고 박찬호는 2012년, 임창용은 2013년, 오승환은 2016년이었다. 김병현은 일본에서 1군 기록이 없다. 지진만 맞았다 아울러 한미일 3개국 1군 무대에 모두 섰던 날 기준으로 유일하게 만으로 20대에 달성하였다. 등번호는 47번(LG 1993~1997, 2002~2003 & SK 2004) - 17번(주니치) - 40번(보스턴). 선수로 활동했던 11년 중 대한..
큰 경기에 강하고, 수비가 뛰어난 1루수. 당시 등번호는 62번이었다. 신인 드래프트 순위가 전체의 뒤에서 2번째였을 정도로 신인 드래프트 당시만 해도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94시즌을 대비하던 LG 트윈스의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당시 타격인스트럭터로 초빙되어 캠프에 머물던 일본프로야구의 레전드 장훈이 "넌 타격 폼에 특별한 단점은 없다."면서 서용빈의 부드러운 스윙을 칭찬하게 되는데, 이에 피그말리온 효과가 발휘되어 서용빈은 자신의 타격에 확신을 가지고 훈련에 매진할 수 있게 되고, '미스터 LG' 김상훈의 이적으로 공백이 된 1루 자리에 경쟁자인 허문회를 제치고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응답하라 1990 - LG 우승의 주역, 서용빈과 허문회의 '엇갈린 운명'. 신인 데뷔 시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