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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이자 통산 100승 - 200세이브의 기록 보유자
LG 트윈스의 레전드. 자신을 아끼지 않으며 한결같이 한 팀을 지켜 온 모습에서 따 온 노송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명선수 출신이 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야구인이다.
동대문중학교 1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동대문상고와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인 한일은행을 거쳐 1985년 계약금 2,300만원에 MBC 청룡에 입단했다. 1984년에는 이상군, 선동열, 류중일 등과 함께 LA 올림픽에 참가했다.
LG 트윈스 최초의 영구 결번식을 가진 선수(41번)이며, 한국프로야구에서 최초의 200세이브-100승을 거둔 선수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등번호 41번은 원래 원하던 번호인 14번을 당시 같은 팀 선배 투수 이광권이 달고 있어서 할 수 없이 뒤집은 것. 그런데 나중에 본인도 맘에 들었는지 이광권의 은퇴 이후에도 41번을 계속해서 달았다.
투수 치고 상당히 작은 키에 정확한 제구력을 갖춰 강속구보다 탄탄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선수라는 인상이 있지만, 데뷔 초기에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구사하는 강속구 계열의 투수였다. 흑마구를 던지는 선수는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주 무기는 데뷔 초기에는 슬라이더. 이후 커리어 중반에 반포크볼이라고 불리는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을 구사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기에 별명은 "노송"이지만 이건 35세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해서 붙은 별명. 데뷔 초기의 별명은 슬라이더가 날카롭다고 "면도날". LG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제국의 파수꾼'이라는 별명도 잠시 있었다. 심지어 1998년에는 만 38세의 나이로 18승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령 다승왕에 등극했다. 심지어는 은퇴한 후에도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30km/h대의 공을 던진다는 소문이 있다.
영구 결번식을 가진 선수지만, 은퇴식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은퇴식을 본인과 구단 모두 원하지 않았고, 은퇴 당시에는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한다. 실제로 현역 생활을 한 마지막 해인 2000년에는 마무리 자리를 장문석에게 넘겨 줘서 기록으로만 따졌을 때는 6승 4패 4세이브에 방어율 5.24였지만, 소화한 이닝은 무려 127이닝이었다. 구단이 등 떠밀듯이 은퇴만 시키지 않았으면 마무리로서는 아닐지라도 중간계투 투수로 몇 년 더 뛰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은퇴일자는 2000년 11월 20일로 선수 생활 동안 걸어온 발자취는 다음과 같다.
1985년 MBC 청룡 소속으로 데뷔.(6경기 1승 2패 2세이브) 경기 도중 타구에 무릎을 맞는 중상으로 시즌 종료.
1986년 구원 1위 (35SP).
1987년 구원 1위 (33SP). 통산 100경기 출장(8.15 잠실 OB전).
1989년 구원 1위 (26SP).
1990년 선발 전향 성공(33경기 12승 5패 5세이브).
1991년 통산 100세이브(8.10 잠실 OB전).
1992년 부상(좌골 신경통) 후유증으로 부진.(14경기 5승 4패)
1993년 마무리 복귀.(구원 2위, 32SP, 50경기 6승 2패 26세이브)
투수 최초 300경기 출장(5.26 잠실 OB전).
1994년 통산 150세이브(7.28 태평양전). 통산 200세이브 포인트(9.23 삼성전).
1995년 2년연속 30세이브 투수 최초 400경기출전(6.25 쌍방울전).
1996년 선발·마무리 겸직. 통산 250세이브 포인트(6.6 잠실 롯데전), 전구단 상대 승리(8.6 롯데전, 시즌 3번째).
1997년 프로투수 최초 투수 500경기 출전 및 97시즌 4호 전구단 상대 승리(잠실 해태전).
1998년 개인통산 100승 달성(4.22 잠실 쌍방울전 달성).
3년 연속 전구단 상대 승리(9.2 잠실 롯데전 달성).
1998년 역대 최고령 다승왕 기록 달성(18승, 당시 38세)
통산 1천탈삼진 달성(9.11 잠실 쌍방울전). 시즌 다승 및 승률 1위 (18승, 0.750).
1999년 통산 200세이브(4.15 인천 현대전). 통산 100승 200세이브는 국내 최초이자 일본에도 기록이 없고 미국에서도 4명뿐인 진기록.
국내 최초 영구 결번식을 치룸(4.19 잠실 한화전).
2000년 투수 최초 통산 600경기 출장(7.15 잠실 한화전).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경기 출장(28경기).
통산 613경기에 등판.
126승 89패 227세이브(방어율 2.98) 1146삼진 기록.
KBO 리그 역사적으로 본다면 최초로 '1이닝 클로저'라는 보직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전에 마무리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용수에 앞서 최초의 전문 마무리 역할을 한 권영호도 있었다. 하지만 권영호의 경우는 7회부터 구원등판하는 경우도 잦았으므로 어떻게 보면 불펜 투수로서 보는 시각도 존재하기도 한다. 김용수도 이광환이 부임한 1992년 이전에는 2, 3이닝 이상도 던지는 고전적 의미의 마무리 역할이었다. 1이닝 클로저의 역할은 이광환이 LG의 투수 운용시스템에 중간계투에 역할을 부여하는 분업체계를 도입하면서 확립되었고 1991년, 백골프백인천 말기 선발-중간-마무리를 가리지 않는 무리한 등판으로 지병이 되어 버린 좌골 신경통을 얻은 그가 다시 마무리 투수로서 재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김용수 은퇴 무렵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자신의 투구 이닝을 철저하게 관리해서 재기할 수 있게 해 준 이광환 감독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내용도 있다.
이러한 1이닝 클로저라는 역할의 확립으로 인해 LG는 흔히 말하는 리드를 빼앗기면 뒤집기 힘든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고, 이를 많은 팀들이 모방, 그 후로 선발-중간계투-마무리라는 체계가 다져지게 된다. 하지만 도입초기에는 2~3이닝을 책임지면서 시즌 규정투구이닝을 채우는 경우도 다반사였던 고전적 마무리에 익숙해 있던 대한민국의 야구팬들에게 매우 생소하게 비쳤으며, 9회 1이닝만 던지고 세이브 숫자를 쌓아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김용수의 임무를 아주 편안한 임무로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의 LG까들이 김용수를 깔 때 가장 많이 하던 말이 '김용수는 1이닝만 던지고 편하게 세이브를 챙긴다'였다.
하지만 이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 역할인지는 그 후의 세계 프로야구의 흐름을 보면 명약관화. 또 은퇴한 후 2012년까지, 즉 12년 동안이나 그가 보유한 통산 세이브의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후배들이, 때로는 1년에 40~50세이브씩 거두면서 5~6년안에 그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한국에서 통산 200세이브를 거둔 투수는 2012년 시즌 후를 기준으로 그를 제외하면 구대성과 오승환, 임창용밖에 없다. 물론 구대성과 임창용은 중간에 5년간 해외리그에서 외도를 한 탓도 있지만, 김용수도 때로는 팀의 필요에 의해 선발로 전향할 수 밖에 없었던 시기(1990~1992년, 1997~1998년)도 있었고, 대졸에 LA 올림픽 참가를 위하여 실업 야구 팀인 한일은행에서 뛴 탓에 실질적인 KBO 데뷔 시즌에 이미 27세였던 것과, 은퇴를 종용받아 김용수 역시 마무리로서 뛴 기간에 손해를 봤다는 사실들도 고려해야 한다.
그의 기록에 도전했던 수많은 도전자들이 3~4년 화려하게 불태우면서 기록에 접근하지만 그 뒤로는 부상과 부진 등으로 5년에 10세이브도 추가하지 못하면서 은퇴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FA 도입으로 선수들의 해외진출이 자유로워지면서 김용수의 저주라고 불리기도 하며 몇십년간은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결국 오승환이 2012년 7월 1일자로 개인 통산 228세이브를 거둬 통산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우며 12년간 변하지 않던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은 다시 쓰여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통산 세이브 기록은 오승환에게 넘겨주고 2위로 내려앉았다.
허나 김용수의 100승 - 200세이브는 선발-중간-마무리로 분업된 현대 야구의 특성상 앞으로 나오기 힘든 대기록은 틀림없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면서 선발로는 기본 10승 정도는 해줬으며, 마무리로는 최소 20세이브 이상을 꾸준히 해온 결과 그런 대기록을 만들 수 있었다. 선발 투수의 덕목인 완급조절, 지구력, 경기운영과 마무리 투수의 덕목인 배짱, 집중력을 두루 갖춘 흔치 않은 유형의 투수였던 것. 이것만 봐도 김용수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는지 그대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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