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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LG 트윈스에서 활약했던 우완 투수. 현역 시절 등번호는 35번.


성대 시절만 해도 한희민에게 밀린 무명의 파이어볼러였으나, 190cm의 큰 체구를 앞세운 강속구 투수라는 장점을 본 김동엽 당시 MBC 청룡 감독이 1차 지명자로 낙점했다. 김동엽 감독이 김태원을 언급하면서 "우리 팀에는 선동열급의 신인이 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나 새가슴이라서 주자만 나가면 투구가 흔들렸다. 김태원의 부진은 김동엽 감독이 잘리는 데 일조했다. 게다가 방위 복무 등으로 인해 4년 동안 잉여 전력이었다. 전지훈련 소개에서 감독 인터뷰를 하면 "올해는 김태원이 기대된다. 김태원만 활약하면 우승할 수 있다." 는 말을 듣는 게 연례행사였다. 


그러다가 MBC에서 LG로 바뀐 동시에 백인천 감독의 부임 첫 해인 1990년에 포텐셜이 폭발해 18승을 기록,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게 된다. 김태원뿐만 아니라 정삼흠도 이 즈음에 포텐셜이 터져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LG 트윈스의 기둥 투수로 활약한다. 1993년 9월 9일 對 쌍방울전에서는 노히트노런(4탈삼진, 3사사구)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3년에 LG 김태원과 해태 조계현의 맞대결이 몇 번 있었는데, 이 때는 잠실이 매진되기도 할 명승부였다. 당시 조계현은 LG에 무척 강해서 LG를 상대로 12연승을 할 정도였다. 번번히 김태원은 호투하고도 조계현에게 주눅든 팀 타선 때문에 매번 1~2점차로 지며 5전 1승 4패를 기록했다.


1994년 이광환 감독의 스타 시스템을 앞세운 LG는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때 김태원은 당시 정규 리그에서 16승을 거두며 이상훈, 정삼흠과 함께 선발 트로이카를 갖추고 거기에 신인 10승의 인현배까지 가세한 강력한 선발진을 구축했다. 스타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LG 트윈스의 전성기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투수가 되었는데, 1990년부터 1995년까지는 짝수 해에만 10승을 거뒀다. 1996년까지 매년 규정 이닝을 채우는 꾸준한 활약으로 LG의 2선발 자리를 지키다가 1998년에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87승 77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43이다.


한편, 1989년 9월 24일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동대문 더블헤더 2차전에서 선발승을 거둬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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