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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에 지명되었다. 이 해의 드래프트는 서울출신의 국가대표 출신인 거물급 대졸 3루수 두명이 화제가 되었다. 한명은 건국대 출신의 송구홍, 또 한명은 한양대 출신의 황일권. 그러나 대체적인 평가는 송구홍이 황일권보다는 한 수 위였다. 그래서 모두들 예상하기를 당시 OB 베어스가 그렇게 한이 맺혀있는 주사위에서 승리한 쪽이 송구홍을, 패한 쪽이 차선책으로 황일권을 가져가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운명의 연고지 우선지명의 날. 당시 합의대로 두 팀의 대표는 주사위를 굴렸고 주사위의 결과는 역시나 LG 트윈스의 승리. 결국 LG 트윈스는 예상대로 송구홍을 지명했고, OB 베어스는 황일권을 지명했다.


전년도 우승팀 프리미엄에 금상첨화의 기대를 받고 입단했건만 첫 해에는 프로 적응에 한계를 드러내며 타율 .236, 2홈런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입단 2년만인 1992년 타율 3할과 더불어, LG 트윈스 역사상 최초로 20-20 을 달성했고 3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인 93년에는 이종열이 성장하면서 유격수로 옮겼으나 역시 3할대 타율로 LG 타선의 중심이었다. 문제는 1993년 시즌을 마치고 현역으로 입대했는데 발가락 피로골절로 귀가조치, 치료 후 재검을 받기 위해 1년을 쉬었다. 그 사이 원래 포지션인 3루는 이적한 한대화와 백업으로 성장한 이종열, 유격수는 유지현이 차지해버렸다. 결국 94년 우승은 밖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야심차게 복귀한 95년, 그는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한 LG는 롯데 자이언츠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었고, 각각 한경기씩 주고받으며 1:1, 그리고 운명의 3차전, LG는 7회까지 6:3으로 앞서고 있었다. 7회말 1사 만루 상황만 넘기면 거의 승리가 보이는 상황. LG의 투수 김용수는 4번타자 마해영을 3루수 땅볼로 유도했고, 송구홍이 3루 베이스를 밟고 느린 마해영을 1루에서 잡았다면 이닝이 끝났을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송구홍은 공을 홈으로 송구했고, 그 공은 3루주자 김민재의 등을 맞추고 말았다. 그사이에 2루에있던 전준호마저 홈인 결국 LG는 롯데에게 패하여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다. 


방위 복무가 끝난 96년에 2루수로 정착하지만 떨어진 타격능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1997년 말 해태 타이거즈로, 그리고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쌍방울이 해체되고 난 2000년 LG 트윈스로 다시 돌아와 32세에 은퇴, 이때 00번을 달고 마지막 선수 생활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송구홍은 LG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남은 것은 1995년의 그 처참한 실수 뿐이다.


사실 전성기 시절에도 센스하고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3루수 시절에도 실책머신이었던데다 BQ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신체능력으로 야구하는 전형적인 몸야구과. 그나마 부상을 자주 겪고 유리몸화 되면서 신체능력이 급감하자 더이상 반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송구홍의 선수시절이 높게 평가되는건 일종의 추억보정에 가깝다. 적어도 전성기 시절엔 20-20도 찍고 3루-유격수도 볼 만큼 경기력은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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