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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부동의 외야수이다. KBO 리그의 수준급 좌타자이다. 수비시 타구판단이 수준급이며 골든 글러브 외야수 부문 최다 수상(6회)을 했다.


1997년에 타율 3할 5리, 23도루로 신인왕을 차지하며 데뷔했다. 1999년 타율 3할 4푼 9리의 고타율과 30홈런 31도루를 기록하며 30-30클럽에 가입했다. 이로써 잠실야구장의 유일한 30-30 클럽 보유자가 되었다. 또한 192안타로 최다 안타왕에도 올랐다. 2005년에는 타율 3할 3푼 7리를 기록하며 생애 첫 타격왕에 올랐다. 김성근이 백인천 이후로 4할 타자가 다시 나온다면 그 주인공은 그일 것이라고 할 정도로 타격에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상으로 출전을 거의 못해 2할 7푼 9리에 그친 2003년을 제외하면 언제나 2할 9푼 ~ 3할 초중반의 타율을 오가는 컨택형 타자였다.


FA 자격을 갖춘 후 LG 트윈스의 자매 구단인 주니치 드래건스와 계약하였다. 2007년에는 주니치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으며, 프로 생활 후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다. 2008년에는 16홈런을 기록했다. 2009년 시즌이 끝나고 계약이 만료되어 방출된 후, 2010년 1월 8일에 친정 팀으로 복귀했다.




2010년 기대를 모으며 2년 간 총액 9억원에 친정 팀 LG 트윈스와 계약했지만 시즌 초 3월의 11타석을 제외하고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2할 초반대의 타율에 허덕였다. (4월 월간 타율 .224). 그러나 5월과 6월에는 3할 중반대의 원래 모습을 보여줬고 7월에 또 다시 2할 극초반대의 타율을 보였으나, 시즌 타율 .290, 9홈런, 64타점으로 무난한 복귀 시즌을 보냈다. 2011년 시즌은 타율 0.338 16홈런으로 마감했으며, 이후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 후보에 올랐지만 기자들의 투표에서 이용규에게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 2012년 선수들과 코치진의 투표로 주장에 선임되었고, 개막전 대구 삼성전에서 차우찬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2012년 6월 1일 한화전에서 좌전 안타를 기록하면서 역대 3번째로 한·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2013년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재활하다가 5월에 복귀했으며, 1군 98경기에 출장했다.


그 해 7월 5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KBO 리그 역대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2013년 7월 9일 NC 다이노스전에서 4타석 4안타를 치며 역대 4번째로 KBO 리그 통산 1900안타를 달성했다. 사이클링 안타를 포함하여 2013년 7월 3일에서 7월 10일까지 4경기에서 10타석 10안타로 KBO 리그 신기록을 기록했다. 그렇게 햄스트링 부상 복귀 후 꾸준히 타격감을 보여 주며, 손아섭을 밀어내고 타격왕을 차지했다. 시즌 후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13 시즌 후 2번째로 FA 자격을 얻어 3년 총액 25억 5000만원(연봉 8억원, 계약금 1억 5000만원)의 조건으로 LG 트윈스에 잔류했다. 


2014년부터는 당시 감독이었던 양상문의 리빌딩 체제에 따라 젊은 선수들에게 주전자리를 많이 내주어 출전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타율도 0.251 홈런 2개로 성적도 많이 하락했지만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당시 NC 다이노스 소속이었던 손민한을 상대로 대타로 나와 팬들이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 2015년은 더욱더 출전횟수가 줄어들었으며 성적도 커리어상에서 최악으로 떨어졌지만 LG팬들은 오히려 더욱더 큰 응원을 보냈으며 두산전에서 쓰리런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6 시즌은 퓨쳐스리그에서 4할 타율을 기록하는등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1군 출전을 하지 못했고 결국 2016년 10월 8일 페넌트레이스 최종전에 1군에 등록되어 대타로 나와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였으며 이것이 본인의 마지막 타석 마지막 안타가 되었다. 


은퇴 후 그의 등번호 No.9는 팀의 두번째 영구결번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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