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 24일에 시작하여 4승 무패로 LG 트윈스가 첫 KBO 리그 정상에 오른 시리즈. MBC 청룡 시절부터 이어온 안습했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우승이다. 간판을 바꿔 달자마자 우승한 유일한 시리즈. 그리고 단일리그 제도 변경 후 최초의 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면서 서울 연고 구단의 첫 우승이다. 시리즈 MVP는 팀의 수호신으로 활약한 김용수. 내용 면에서는 너무 싱겁게 끝난 경기라서 재계 라이벌에게 무참하게 졌다는 이유로 준우승팀 삼성의 정동진 감독이 해임된 흑역사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년 후 똑같은 일이 삼성에 벌어진다. 1990년 정규 시즌은 역대 손꼽히는 치열한 정규시즌 1위 쟁탈전이 벌어진 한 해였다. 시즌 종료를 한 달 남긴 시점까지는 빙그레 이..
1989년 10월 26일에 시작하여 11월 1일에 종료된 한국시리즈로 해태 타이거즈가 1988년에 이어 또 다시 빙그레 이글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다. 해태는 이 우승으로 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및 전무한 한국시리즈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반대로 빙그레 입장에서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우승을 놓치면서 1999년 우승 전까지 가장 우승에 가까웠던 순간을 아깝게 놓쳤다.사실 빙그레 전력으로 보면 이때보다는 92년이 더 아까웠다. 시리즈 MVP는 18타수 8안타를 치면서 활약한 박철우. 1989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시즌 체제가 도입된 시즌이었다. 이미 1988년에 돌풍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준 빙그레는 1989년에는 돌풍을 넘어 태풍을 일으켰다. 정규시즌 운용에 있어서는 타..
198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6일까지 펼쳐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로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하면서 통산 4번째 우승이자, 최초의 3연패를 달성한 시리즈다. 삼성 라이온즈가 2013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며 3연패를 가져가기 전까지 25년동안 깨지지 않았던 기록이다. 그야말로 해태가 당대 최강자로서의 위엄을 과시한 시리즈. 1986년과 1987년이 제도의 허점 때문에 해태가 유리했다는 말을 전후기 통합 우승 및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그런 말을 들어가게 만들었다. 시리즈 MVP는 1차전 세이브와 3차전 완봉승, 6차전 완투승을 거두면서 2승 1세이브로 맹활약한 문희수. 1986년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2위를 차지해 전후기리그 우승 없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해서 우승을 차지했고, 1987년에는 후기리그에서 천신..
해태가 4전 전승의 완승을 거두면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이자, 프로야구 역사상 첫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시리즈다. 반대로 삼성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한국시리즈 징크스가 발동하는 악몽 같은 시리즈였다. 한국시리즈 MVP는 시즌 내내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김준환이다. 1986년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했지만, 후기리그 4위로 내려 앉으면서 PO을 치러야 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한 삼성 라이온즈는 감독을 김영덕에서 박영길로 교체하고 1987년에는 독하게 우승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 결과는 1987년 팀 타율 3할과 전기 및 후기리그 동반 제패의 위업이었다. 이 해 삼성의 전력은 타력이 워낙 막강했다. 팀 타선은 1번부터 9번까지 쉬어갈 틈이 없었고, 23승을 거둔 김시진을 필두로 한..
해태 왕조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시리즈이자, 삼성의 슬픈 준우승 전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한국시리즈. 승부 자체도 매 경기 접전 양상으로 벌어졌고, 두 번의 연장전과 5차전 모두 3점차 이내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1980년대 개판이었던 관중 문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졌던 시리즈로 더 기억에 남으면서 시리즈의 치열했던 접전이 모두 묻혀버린 비운의 시리즈. 해태 타이거즈는 이 우승으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 되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1986년 1월에 열린 KBO 이사회였다. 1985년 프로야구가 삼성의 전,후기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사라져버리자, 김이 샐대로 샌 KBO는 어떻게든 한국시리즈를..
1985년 프로야구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전년도보다 10경기 늘어난 55경기씩 총 110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뤘다. 그런데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휩쓸게 되자 한국시리즈는 자연히 소멸됐다. 이 사례는 김시진과 김일융 2명이 나란히 25승씩 50승을 합작했던 1985년 삼성 라이온즈가 완전 우승을 달성했던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따라서 1985년은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연유에서 농담삼아 1985년 한국시리즈는 삼성 구단을 둘로 쪼개 청백전을 했다는 식의 유머도 존재한다. 몇몇 사람들이 1985년에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를 궁금해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런 사정으로 인해서 생..
1984년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어, 롯데 자이언츠 & 최동원이 4승 3패로 우승. 일명 최동원 시리즈. 전기리그 1위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희대의 져주기 게임을 시전하면서 롯데를 한국 시리즈 파트너로 골랐다가 최동원에게 패배한 것으로 유명한 시리즈. 1984년 프로야구는 전기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100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루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한 팀이 전·후기리그를 제패하면 한국시리즈는 자연히 소멸되었던 것이 그 당시의 시스템. 1984년 당시 전기리그에서 우승한 삼성은 후기리그까지 제패,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킬 계획이었다. 그리고 당시 삼성 멤버를 보면 그럴만도 했다. 김시진, 김일융의 투톱에 이만수, 장효..
1983년 10월 15일에 시작해서 10월 20일에 종료된 한국시리즈. 4승 1무로 해태 타이거즈가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시리즈 MVP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딛고 한국시리즈에서 맹타를 휘두른 김봉연. MBC 청룡의 내분으로 인해 자멸한 시리즈이기도 하고, 해태 타이거즈도 이 시리즈 이후 유명한 불고기 화형 사건이 벌어지는 등, 이래저래 경기 자체보다는 경기 앞 뒤의 에피소드가 더 유명한 시리즈다. 사실 경기 내용 자체는 태업성 플레이가 겹치면서 영 좋지는 않았다. 원년에 선수 부족에 시달리면서 4위를 차지한 해태는 김응용 감독의 취임 이후 김응용의 지도력에 더해 재일교포 포수 김무종이 안방을 책임지고, 이상윤과 주동식이 팀의 투수진을 구축하면서 선두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장명부의 괴력을 앞세운 삼미 ..
19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열린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경기 결과는 4승 1무 1패로 전기리그 우승팀인 OB 베어스가 후기리그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를 누르고 승리하며 프로야구 초대 우승팀의 영광을 안았다. 박철순의 부상 투혼, 김유동의 극적인 홈런, 그리고 이선희의 눈물로 대변되는 시리즈이자 프로야구의 첫 한국시리즈가 명승부로 장식되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시리즈이다. 당초 예상을 뒤엎고 원년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확보한 OB 베어스는 전기리그 동안 다소 무리했던 에이스 박철순을 적당히 던지게 하면서도 의외로 후기리그 에서도 상당히 잘 나가면서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막판 거세게 추격한 삼성 라이온즈에게 쫓기면서 후기리그 우승의 향방은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