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스윕이 될 뻔한 한국시리즈 2000년 최고의 전력을 자랑한 우승후보 현대 유니콘스와 우동수 트리오의 두산 베어스의 맞대결. 현대 유니콘스가 1~3차전을 내리 이기며 싱겁게 끝나는 듯 했으나 홍원기의 4차전 대활약을 시작으로 두산이 4~6차전을 내리 이기며 한국 시리즈 사상 초유의 리버스 스윕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7차전에서 톰 퀸란의 원맨쇼로 4승 3패로 간신히 우승했으며 한국시리즈 MVP는 7차전 원맨쇼를 펼친 톰 퀸란이 차지하였다. 퀸란은 홈런 3위(39개)였으나 타율은 0.236에 그칠정도로 그야말로 공갈포였다. 타순에서 8번으로 밀렸을 정도. 하지만 7차전 첫타석에서 2타점 2루타, 4회에서 3점짜리 홈런, 8회에 솔로홈런을 날리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세기의 마지..
1999년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벌인 한국시리즈. 1992년 한국시리즈의 리바이벌 매치로, 99년 한국시리즈 당시 경기양상이 92년 한국시리즈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1999년부터 양대리그 제도를 실시, 포스트시즌이 드림리그 1위 - 매직리그 2위 / 매직리그 1위 - 드림리그 2위가 맞붙어 승자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개최되었다. 매직리그 2위였던 한화 이글스는(당시 전체 승률 4위) 구대성을 앞세워 드림리그 1위(전체 승률 1위)였던 두산 베어스를 4:0으로 가볍게 스윕하여 여유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드림리그 2위 롯데 자이언츠(당시 전체 승률 2위)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평가된 매직리그 1위(전체 승률 3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4승 3패로..
페넌트레이스 1위팀 현대 유니콘스와 3위팀 LG 트윈스가 맞붙었던 한국시리즈이자 1994년 한국시리즈의 리턴매치다. 인천광역시 연고 야구팀 사상 첫 우승으로 인천광역시의 야구팬들에겐 삼청태시절의 한을 풀어버릴 수 있었던 시리즈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비인천지역 팬들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만년 하위권팀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만 2년 후 현대가 수원으로 야반도주하면서 인천팬들과 비인천팬들은 서로 갈라지고 으르렁거리는 관계가 돼버렸다. 페넌트레이스에의 전력은 현대가 81승 45패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LG도 전년 해태에 이어 해볼만한 게 현대에게 11승 7패로 유독 강했다. 특히 태평양-현대 입장에서는 LG의 유지현, 김동수가 상당히 얄미웠던 ..
1997년 열린 KBO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대결. 당시 두 팀의 대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때마다 모두 우승한' 해태, '한국시리즈에서 패배 자체가 없는' LG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결과는 해태의 통산 9번째 우승. 한국시리즈 MVP는 93년에 이어 이종범이 차지했다. 해태는 이해 패넌트레이스에서 2~5위인 LG, 쌍방울, 삼성, OB를 상대로 37승 1무 34패를 기록할 정도로 평타 수준이었지만, 현대, 한화, 롯데를 상대로 38승 16패를 기록하면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롯데는 해태에게서 3승 15패를 기록, 해태의 패넌트레이스 우승을 도와주는 훌륭한 먹잇감이 되었다. 반면 LG는 해태에 10승 8패로 우위를 보이고도 쌍방울에 6승 12패, 삼성에 8승 10패를 기록하면..
1996년 열린 KBO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가 대결하였다. 1996년 시즌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시즌이었는데 당초 상위권으로 분류되던 LG, 롯데가 모두 탈락하고 꼴찌를 다툴것으로 예상된 해태, 현대, 쌍방울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가만히 있던 삼성과 한화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허나 한화 이글스는 포스트 시즌 진출을 했고 삼성은 가을야구 탈락과 동시에 현재까지 구단 최악의 흑역사였던 6위를 기록했다. 특히 해태는 시즌 전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이순철의 유남호 폭행 사건과 항명 파동까지 일어나고 동열이도 없고, 성한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즌 우승을 했다. 특이사항이라면 인천광역시에서 열린 4차전에서 당시 현대의 선발 투수였던 정명원이 현재까지 KBO 한국시리즈최..
1995년 10월 14일에 시작해 10월 22일까지 진행해서 7차전 접전 끝에 OB 베어스가 롯데 자이언츠를 4승 3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매 경기가 3점 차 내로 벌어진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손꼽히는 혈전. 전년도인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을 이겨내고 믿음의 야구를 선보인 김인식 감독을 필두로 박철순 등의 노장의 관록과 심정수등 신인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OB는 2번째 우승을 맛보게 된다. 한국시리즈 MVP는 빠른 발로 내야를 휘저었던 김민호. 전년도의 항명 파동에 대한 속죄를 하는 것처럼 OB 베어스 고참 선수들은 상당히 분전했다. 박철순은 9승으로 원년 이후 가장 많은 승수를 올렸고, 김상호는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르면서 팀 타선을 이끌었다. 그리고 김상진이 에이스로 제 역할을 다 한 가운..
1994시즌 페넌트레이스 1위 LG 트윈스와 2위 태평양 돌핀스가 맞붙었던 시리즈. LG 트윈스가 4연승을 거두며 V2를 달성했다. 한국시리즈 MVP는 1990년도에 이어 김용수가 차지했다. 김용수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2번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이후 이종범이 1997년, 정민태가 2003년, 오승환이 2011년에 2번의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였다. 4연승으로 싱겁게 끝났지만, 2차전만 빼고는 모두 한점차 접전을 펼친 시리즈이기도 했다. 특히 1차전에 태평양 돌핀스의 좌완 에이스 김홍집의 141구 완투패가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LG 트윈스팬들에게는 추억의 리즈 시절이나 해도 다름 없었다. LG 트윈스는 이 우승 이후 롯데 자이언츠와 더불어 20년 넘도록 우승 기록이 없다..
1993시즌은 KBO 리그에서 중요한 년도로 기억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선동열, 최동원, 김시진, 이만수, 김성한, 장효조 등이 이끌던 80년대 스타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종범, 양준혁, 구대성, 이상훈, 이대진, 박충식 등 1990년대 프로야구를 이끌어나간 신예 스타들이 데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초까지 명문구단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기존의 스타들을 대체할 새로운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공교롭게도 이 두 구단이 한국시리즈에서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해태가 구단 역대 최고인 .655의 승률(81승3무42패)을 기록했지만 그해 패넌트레이스에서 삼성에게만은 유독 7승 11패로 약했다. 그래서 코시는 재미있는 승부가 예측되었다. 특히 1993년 한국시리즈는 3차전 박충식..
페넌트레이스 1위 빙그레 이글스와 3위 롯데 자이언츠가 맞붙었던 한국시리즈. 1984년 이후 두 번째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한 한국시리즈이기도 하다. 이후 롯데는 우승기록이 없어 현재까지도 응답하라 1992를 외치는 롯데팬들이 많다. 2015년 현재는 야구의 신 이라는 분을 감독으로 영입하고서도 여러 병크짓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이글스 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년 OB우승 이후 삼성 라이온즈 및 빙그레 이글스에서는 번번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만 기록한 김영덕 감독은 다승구원왕이라는 역사에 다시 나오기 힘든 타이틀을 차지한 송진우 외 한용덕, 정민철, 이상군등 쟁쟁한 투수진과 전성기시절의 장종훈, 이정훈, 이강돈 등등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고 기다렸지만…. 정규시즌 3위를 ..
1991년 10월 9일에 시작하여 4승 무패로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한 시리즈. 전년도에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을 바로 되갚으면서 최강자로서 다시 해태가 군림하는 계기가 된 시리즈이자, 1990년대 4차례 통합 우승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기도 하다. 시리즈 MVP는 팀의 주전 포수로서 15타수 7안타 8타점을 친 장채근. 전년인 1990년 간발의 차로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하고, PO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충격적인 3연패를 당한 후, 김응용 감독은 바로 지리산에 칩거하며 팀의 문제점을 분석했고, 그 결과를 통해 1991년에는 그야말로 칼을 갈고 나오며 시즌을 임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해진 전력에 독기를 품은 해태는 1991년에 시즌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시즌 초반 김성한의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