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벌어졌던 한국시리즈. 정규리그 1위인 삼성 라이온즈와 정규리그 3위인 두산 베어스간에 펼쳐졌다. 두산의 정규 시즌 성적은 65승 5무 63패로 5할을 겨우 넘겨 5할 1푼에도 도달하지 못했는데(0.508), 이는 포스트 시즌에 탈락한 06년도의 두산보다도 더 낮은 승률이었다. 그 원인으로, 우재주로 대표되는 강력한 타선에 비해 투수진은 참담할 정도였는데 팀 내 최다승 투수의 승수가 9승이었다. 19승이 아니다. 또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가 선발과 계투를 오갔던 이혜천 달랑 1명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중 유일한 케이스. 심지어 정규 시즌 3위였던 두산은 1위 삼성과의 승차보다 오히려 당시 최하위였던 롯데와의 승차가 더 적었다. 거기다가 정규시즌 1위 삼성이 -13.5, 정규 시즌 2위 현대..
1993시즌은 KBO 리그에서 중요한 년도로 기억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선동열, 최동원, 김시진, 이만수, 김성한, 장효조 등이 이끌던 80년대 스타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종범, 양준혁, 구대성, 이상훈, 이대진, 박충식 등 1990년대 프로야구를 이끌어나간 신예 스타들이 데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초까지 명문구단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기존의 스타들을 대체할 새로운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공교롭게도 이 두 구단이 한국시리즈에서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해태가 구단 역대 최고인 .655의 승률(81승3무42패)을 기록했지만 그해 패넌트레이스에서 삼성에게만은 유독 7승 11패로 약했다. 그래서 코시는 재미있는 승부가 예측되었다. 특히 1993년 한국시리즈는 3차전 박충식..
1990년 10월 24일에 시작하여 4승 무패로 LG 트윈스가 첫 KBO 리그 정상에 오른 시리즈. MBC 청룡 시절부터 이어온 안습했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우승이다. 간판을 바꿔 달자마자 우승한 유일한 시리즈. 그리고 단일리그 제도 변경 후 최초의 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면서 서울 연고 구단의 첫 우승이다. 시리즈 MVP는 팀의 수호신으로 활약한 김용수. 내용 면에서는 너무 싱겁게 끝난 경기라서 재계 라이벌에게 무참하게 졌다는 이유로 준우승팀 삼성의 정동진 감독이 해임된 흑역사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년 후 똑같은 일이 삼성에 벌어진다. 1990년 정규 시즌은 역대 손꼽히는 치열한 정규시즌 1위 쟁탈전이 벌어진 한 해였다. 시즌 종료를 한 달 남긴 시점까지는 빙그레 이..
해태가 4전 전승의 완승을 거두면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이자, 프로야구 역사상 첫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시리즈다. 반대로 삼성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한국시리즈 징크스가 발동하는 악몽 같은 시리즈였다. 한국시리즈 MVP는 시즌 내내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김준환이다. 1986년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했지만, 후기리그 4위로 내려 앉으면서 PO을 치러야 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한 삼성 라이온즈는 감독을 김영덕에서 박영길로 교체하고 1987년에는 독하게 우승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 결과는 1987년 팀 타율 3할과 전기 및 후기리그 동반 제패의 위업이었다. 이 해 삼성의 전력은 타력이 워낙 막강했다. 팀 타선은 1번부터 9번까지 쉬어갈 틈이 없었고, 23승을 거둔 김시진을 필두로 한..
해태 왕조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시리즈이자, 삼성의 슬픈 준우승 전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한국시리즈. 승부 자체도 매 경기 접전 양상으로 벌어졌고, 두 번의 연장전과 5차전 모두 3점차 이내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1980년대 개판이었던 관중 문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졌던 시리즈로 더 기억에 남으면서 시리즈의 치열했던 접전이 모두 묻혀버린 비운의 시리즈. 해태 타이거즈는 이 우승으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 되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1986년 1월에 열린 KBO 이사회였다. 1985년 프로야구가 삼성의 전,후기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사라져버리자, 김이 샐대로 샌 KBO는 어떻게든 한국시리즈를..
1985년 프로야구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전년도보다 10경기 늘어난 55경기씩 총 110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뤘다. 그런데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휩쓸게 되자 한국시리즈는 자연히 소멸됐다. 이 사례는 김시진과 김일융 2명이 나란히 25승씩 50승을 합작했던 1985년 삼성 라이온즈가 완전 우승을 달성했던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따라서 1985년은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연유에서 농담삼아 1985년 한국시리즈는 삼성 구단을 둘로 쪼개 청백전을 했다는 식의 유머도 존재한다. 몇몇 사람들이 1985년에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를 궁금해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런 사정으로 인해서 생..
1984년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어, 롯데 자이언츠 & 최동원이 4승 3패로 우승. 일명 최동원 시리즈. 전기리그 1위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희대의 져주기 게임을 시전하면서 롯데를 한국 시리즈 파트너로 골랐다가 최동원에게 패배한 것으로 유명한 시리즈. 1984년 프로야구는 전기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100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루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한 팀이 전·후기리그를 제패하면 한국시리즈는 자연히 소멸되었던 것이 그 당시의 시스템. 1984년 당시 전기리그에서 우승한 삼성은 후기리그까지 제패,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킬 계획이었다. 그리고 당시 삼성 멤버를 보면 그럴만도 했다. 김시진, 김일융의 투톱에 이만수, 장효..
19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열린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경기 결과는 4승 1무 1패로 전기리그 우승팀인 OB 베어스가 후기리그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를 누르고 승리하며 프로야구 초대 우승팀의 영광을 안았다. 박철순의 부상 투혼, 김유동의 극적인 홈런, 그리고 이선희의 눈물로 대변되는 시리즈이자 프로야구의 첫 한국시리즈가 명승부로 장식되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시리즈이다. 당초 예상을 뒤엎고 원년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확보한 OB 베어스는 전기리그 동안 다소 무리했던 에이스 박철순을 적당히 던지게 하면서도 의외로 후기리그 에서도 상당히 잘 나가면서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막판 거세게 추격한 삼성 라이온즈에게 쫓기면서 후기리그 우승의 향방은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