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3년부터 2014년까지 LG 트윈스에서 주로 2루수와 유격수로 활약한 선수다.
성남고등학교 시절 타격 소질이 있고 장타력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남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형 유격수로 촉망받았다. 고3 때 서울시 춘계리그 25타수 19안타에 빛나는 타격 재능과, 이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던 수비적 재능으로 서울 연고 구단의 주목을 받았다.
스카웃 당시 주전 유격수 김민호가 급격히 하락세를 타던 두산이 이미 입단한 성남고 출신 고영민과의 키스톤 시너지를 위해 더 관심을 보였고, 3억 8천만원의 계약금을 제시했다. 그러나 영원한 잠실 라이벌인 LG 역시, 유지현의 2루전향과 동시에 유격수 공백을 물빠따인 권용관으로 메우던 상황이었기에 타격이 좋은 박경수로 메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4억 3천만원이라는 계약금을 제시해 2002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1차 지명 대상자인 박경수와 계약하게 된다.
이렇게 구단의 큰 기대를 받으며 LG에 입단한 박경수는 데뷔 첫 해인 2003년부터 잔부상에 시달리며 성적은 172타수 0.273 19타점 1홈런 2도루에 그치며 아쉬운 데뷔 첫해를 보냈다. 데뷔 시절부터 잔부상에 시달리던 박경수는 이후로도 프로생활을 하면서2004 ~ 2005년 어깨 탈구, 2009년 손목인대, 2010년 햄스트링 부상으로 꾸준히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타격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던 수비에서도 의외로 실책이 잦았고 그로 인해 포지션 이동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데뷔 시즌 박경수의 포지션은 주로 1루수였고, 그 이후에도 3루수와 유격수를 전전하다가 2007 시즌에 이르러서야 2루에 정착하게 된다.
포텐셜만큼은 최고로 평가받았지만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잦은 부상 탓인지 제대로 된 타격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하위타순에 배치됐다. 하지만 선구안과 번트 능력이 좋았기 때문에 2번 타자로 기용되기도 했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1번 타자로 기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작전 구사 능력은 있지만 발이 빠르지 않고 주루 센스가 그에 못미쳐 도루 개수 및 성공률은 낮은 편이었다. 가진 선구안에 비해 공이 눈에 들어왔을때 맞추는 능력이 떨어져 타율이 낮았고 팬들에게는 박병호, 정의윤 등과 함께 항상 아쉬운 만년 유망주 소리를 들어야했다.
2008 시즌에도 초반에 괜찮은 페이스를 보여줘서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승선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팬들의 기대감을 가졌지만 탈락했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엔트리에서도 빠지면서 2할 8푼대의 타율도 2할 5푼대로 추락했다. 2011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해야만 했다.
매년 시즌 초반 괜찮은 타격감을 보이며 기대하다가 어김없이 타격감이 떨어지면서 타율이 떨어졌다. 그래도 2루에 마땅한 대체자가 없어서 매년 100경기 이상은 출장했다. 부진한 타격에 비해 수비력은 준수해 유격수 및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했다. 어깨 부상 이후로 좀 약해졌지만 러닝 스로나 병살 처리도 매끄럽게 해주는 편이었다. 정근우처럼 화려하거나 고영민처럼 유별나진 않았지만 안정적인 면은 이들과도 견줄만했다. 별명 중에 수비요정이 있을 정도였고 사실 KBO 2루수 연속경기 무실책 기록 역대 1위이다. 107경기 연속 무실책으로 2위 안경현의 71경기와 36경기나 차이가 난다.
2013년말 공익근무요원을 마치고 복귀한 시즌인 2014년에는 LG 트윈스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스프링캠프 때는 부상으로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지만 5월 9일 1군으로 올라왔고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7번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장, 1안타를 기록했다. 6월 13일의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홈스틸을 성공시켜서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시즌 첫 홈스틸이자 2010년 이후 4년만에 나온 35호 홈스틸이었고 그 후에도 볼넷과 안타 등 쏠쏠한 활약을 하여 10:9로 역전승하는데 큰 힘이 됐다. 야구 센스가 돋보였던 이 경기 이후로 LG 트윈스는 반등을 했고 그해 포스트시즌을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10월 17일 롯데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햄스트링 증상으로 중도 교체되었고, 정작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는 제외됐다. 팀이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는 3승 1패로 통과했으나 박경수는 여전히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팀이 1승 3패로 탈락하면서 박경수의 데뷔 후 첫 포스트시즌 기회가 아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2003년부터 암흑기만을 경험하다가 2013년 LG 트윈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TV로 본 박경수였기 때문에 팬들이나 선수에게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렇게 뜨거운 시즌을 보낸 후 드디어 FA 자격을 얻었지만, 구단의 반응은 시원찮았고 11월 26일 LG와의 우선 협상이 결렬됐다. 그리고 이틀 뒤 4년 총액 18억 2,000만 원(계약금 7억 원, 연봉 2억 3,000만원, 옵션 4년 간 연 5,000만 원)을 받고 KT 위즈와 계약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야구 > LG 트윈스 선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LG 트윈스에 인대를 바친 투수 불꽃남자 '로켓' 이동현 (0) | 2019.12.01 |
---|---|
암흑기 시절 에이스 '봉크라이' 봉중근 (0) | 2019.04.04 |
우타자 '통산 첫 2000안타'의 주인공 4차원 정성훈 (0) | 2018.06.02 |
대괄캡틴 '야잘잘' 국민우익수 이진영 (0) | 2018.05.28 |
암흑기 리드오프 슈퍼소닉 이대형 (0) | 2018.05.17 |
불펜의 자존심 '상록수' 류택현 (0) | 2018.02.18 |
잠실구장 포수 100타점의 주인공 '앉아쏴' 조인성 (0) | 2018.02.17 |